큰아이의 생일을 맞아 지난 세월을 떠올리며 밥상을 마련해 본다.

큰아들의 생일이다. 핑계 삼아 식사라도 함께 할까해 내려오라고 했더니 주말 근무 때문에 일요일 오후에나 시간을 낼 수 있다고 한다. 너나 할 것 없이 참으로 바쁜 세상에 살고 있다. 네 식구가 한자리에 모여 밥을 먹은 기억이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두 아들은 고등학교 때부터 집을 떠나 있었다. 기숙사 생활을 시작으로 독립해 삼십의 나이에 이르렀으니 부모와 꽤 오랜 세월을 떨어져 지낸 셈이다. 명절 때나 특별한 행사가 아니면 한자리에 모일 기회가 극히 드물다. 이미 오래전에 내 품을 떠나 있었지만 품 안의 자식이란 말을 점점 더 실감한다. 자식 해바라기하는 부모 마음 일터이다.

나 어릴 적에는 대식구가 살았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부모님과 고모, 삼촌, 그리고 동생들. 거기다가 농사일을 거드는 사랑채 아저씨까지. 한 끼 식사에 밥상이 기본으로 세 개는 차려졌다. 어쩌다 대하는 옆집 친구네 집의 단출한 밥상이 늘 부럽기만 했다.

‘왜 밥상이 하나뿐일까? 부모님이 가족이 없으신가. 간단해서 참 좋겠다.’

친정어머님은 부엌에서 늘 분주했고, 행주치마가 마를 날이 없었다. 그 일이 얼마나 힘겨웠을까. 그러나 정작 어머니는 그때가 사람 사는 것 같았고 가장 행복했었노라고 종종 그때를 그리워하신다. 사람의 정이 그리워서 일게다.

가족이란 함께 밥을 먹는 사람으로 식구라고도 한다. 산업사회로 넘어가면서 가족이 해체돼 집집마다 둘이 아니면 혼자 대하는 밥상이 많아진 세상이다. 나 역시도 혼자서 식사를 할 때가 참 많다. 그렇게나 부러웠던 단출한 밥상이 이제는 적적하게만 여겨지니, 나도 어머니처럼 사람을 그리워하며 늙고 있나 보다. 밥상에 앉으면 늘 되풀이됐던 까마득한 날의 할아버지 잔소리마저도 그립다.

“어른이 수저 들기 전에 아이들이 먼저 수저를 들어서는 안 된다.”

“밥알은 부모의 땀이다.”

“천천히 골고루 먹어라.”

그것이 가정교육의 시초라 할 수 있는 할아버지 나름의 밥상머리 교육이 아니었나 싶다. 귀에 못이 막히도록 들어왔던 그 말씀이 올바른 교육이 돼 가족 간의 유대감을 갖게 했고, 알게 모르게 꼬맹이들의 인성과 정서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으리라 짐작된다.

주인공 없는 생일상이지만 생일의 의미보다는 첫아이를 낳느라 고생한 나를 위해서라도 풍성한 밥상을 준비해야겠다. 온 식구 밥 한번 먹기 정말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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