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가면 무엇을 하며 먹고 살지 막연하고 두렵습니다. 직장에 다닐 때는 달마다 꼬박꼬박 월급을 받았지만 이젠 뚜렷한 수입의 보장이 없습니다. 벌어놓은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그마저도 이리저리 쓰다보면 몇 년을 버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귀농은 하고 싶지만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오래 농사를 짓고 살던 분들도 빚에 허덕이는데 초짜인 내가 과연 버텨 낼 수 있을까 걱정입니다. 특별한 기술도 없으니 무엇으로 내 가족을 먹여 살릴지 불안하기만 합니다. 그렇다고 복작거리기만 하지 사람 사는 재미가 없는 도시에서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습니다. 바로 떠나고 싶지만 선뜻 결정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의 마음은 이렇듯 다 비슷하리라 봅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요? 먼저 모든 걸 내려놓고 마음을 비웁니다. 그러고 나서 쳇바퀴를 돌듯 바쁘게 살아온 자신에게 가장 길고 멋진 휴가를 주는 겁니다. 실제로 그렇게 살아본 귀농자가 있습니다. 가족이 함께 “우리가 시골에 내려가면 3년 간 아무 일도 하지 말고 그냥 놀자”고 약속했답니다. 그동안 나를 돌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만 고생했으니 불쌍한 자신에게 보상을 하자는 것이지요. 놀기만 하는데 큰 돈을 쓸 수는 없으니 생활비를 아끼자, 한 달에 30만원만 쓰면 3년 휴가비로 1000만원이면 족하지 않겠느냐고 의기투합하고 3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3년 후, 그 1000만원은 다 쓰지도 못한 채 많이 남았다고 합니다. 반대로 그 짧은 시간에 소득을 쫓아서 시설을 짓고 기계를 구입하고 규모를 늘리다 억대의 빚더미에 올라앉은 귀농자도 있습니다. 사례가 극단적이지만 생각해 볼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아무것도 안한다지만 어떻게 30만원으로 4인 가족이 살 수가 있을까요.

시골에서 가장 많이 드는 비용이 유류비입니다. 가옥이 오래되다 보니 난방에 들어가는 돈이 적지가 않습니다. 방이 크지 않다면 단열만 잘 해도 연료가 적게 듭니다. 지금은 적정기술(대안기술)이란 이름으로 연료가 적게 들면서 효율이 좋은 난방기술 자료도 많이 나와 있습니다. 복잡한 기술이 아니니 조금만 노력하면 어렵지 않게 이해하고 실행할 수 있습니다.

대개 농기계를 돌리는 것 보다 자동차를 움직이는데 더 많은 기름을 씁니다. 내 인생의 휴가를 왔다면 이곳저곳 돌아다닐 이유가 없습니다. 잘 노는 것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멀리 가지 않고도 가족이 잘 놀 수 있는 방법을 개발·발굴할 수 있다면 외로움에 못 이겨서 자꾸 돌아다니는 일을 줄일 수가 있습니다. 가족이 함께 뒷간을 짓고 나물을 캐고 손바느질을 하고 함께 놀이를 만들고 놀 수 있습니다.

도시는 소비적인 여흥이 주류지만 시골은 노는 것도 생산적입니다. 놀면서도 작은 텃밭은 일구니 먹을거리에 들이는 돈도 적습니다. 요즘은 소득이 되는 작물만 키우다보니 텃밭도 일구지 않는 농가가 꽤 있습니다. 시골에도 채소를 파는 트럭이 돌아다니기는 하지만 놀고 있는데 시골에서 채소를 사다 먹는 것은 좀 아니겠지요. 규모가 작은 텃밭이니 농자재나 기계를 쓸 일도 없습니다. 자신이 기른 작물을 중심으로 음식을 해 먹다보니 제철에 맞는 작물로 별별 요리기술을 다 동원합니다. 자연스레 자급능력이 높아집니다.

여기에 고등교육이 아니라면 시골에서 교육에 드는 비용은 거의 없습니다. 비교적 교육혜택을 많이 받는 편입니다. 제 아이의 선생님은 한 반을 맡아 두 명의 아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1대 2 교육시스템이지요. 홈스쿨링이라고 해서 부모가 학교를 대신해 아이와 함께 지내며 직접 교육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가족이 휴가를 왔다고 생각한다면 딱 들어맞는 교육일지도 모릅니다. 부모가 바쁘지 않으니 자식이 부모와 가깝게 자라고 함께 배웁니다.  

귀농한지 3년은 지나야 제 농사를 찾는다고 합니다. 선배들은 초기 3년은 교육비로 봐야한다고 한 목소리로 충고합니다. 실제로 그때가 돼야 본인에게 맞는 농사를 설계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농사교육을 적극적으로 찾아다니게 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잘못될까 불안해하면 마음만 급해집니다. 넓고 긴 안목보다는 코앞의 일에만 전전긍긍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들 시간은 금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아까운 이 시간을 가치 있게 자신에게 잘 쓰는 사람은 드뭅니다. 부디 블루베리니 아로니아니 돈이 된다는 유혹에 빠져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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