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성·개인의 성숙으로 이루는 변화

국가를 구성하는 세가지 요소는 ‘국민, 영토 그리고 주권’이다. 국민과 영토는 이해하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지만, 주권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대한민국 헌법은 대한민국 국가 영토 안에서 살아가는 국민의 주권에 대한 상세한 해설서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삶을 사는 많은 영역이 주권 실현과 관련돼 있다.

교육, 정치적 선택, 국방, 납세, 개인의 행복 등 많은 영역을 국가 헌법이 규정하고 우리는 삶의 구체적인 현장에서 그 실체를 만나게 된다. 대통령 선거에 대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집중하고 의지를 모으는 이유도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주권 실현의 방향이나 범위에 차이가 나는 걸 늘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의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은 국가 권력을 통해 큰 흐름을 결정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국가가 지금처럼 주권을 거의 독점하다시피한 건 역사를 통해 볼 때 그렇게 오래된 것도 아니고, 상당히 강한 국가 안에서도 그런 독점적 지배(독재)에 대한 저항도 만만찮았기 때문에 실제 국가의 지배 범위가 그렇게 넓다고 할 수 없다.

국가 범위 바깥에 있는 주권 실현의 장소는 오랫동안 마을이었다. 마을은 ‘마을 공화국’이라는 표현이 가능할 정도로 오랫동안 인류의 삶을 지배해 왔고, 그 속에서 인류는 공동체의 완성된 인간으로 성장하는 경험을 꾸준히 해 왔다.

한 사회가 변화를 통해 점점 더 좋은 사회로 가는 길에는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하나는 국가의 진보, 두 번째는 마을의 자율, 세 번째는 개인의 성숙이다. 우리가 대통령 선거에 마음을 쓰고 권력을 얻기 위한 노력의 절반 정도라도 ‘마을의 자율’을 위한 활동, 가치를 중심으로 한 시민사회 활동을 통해 우리의 주권을 실현하고 서로 협력해 변화를 이끌어 내는 노력을 할 수 있다면 ‘국가의 진보’에 대해 지나친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린 국가에 대해서는 과잉 기대하고 우리들 서로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적게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농촌에 살면서 마을 어르신들을 따라갈 수 없는 지점이 ‘서로 서로 돕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함께 살아오면서 삶의 고락을 함께 한 그분들이 나누는 상호 부조의 감성은 공부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늘 느낀다. 그건 그런 경험을 꾸준히 해야 가능한데 진보적 의지를 가진 30~40대는 민주화를 통해 국가의 진보를 이룬 경험은 갖고 있지만 서로 협력해 자율적 삶을 살았던 경험은 없는 세대이다.

경험하지 못했기에 ‘마을의 자율’을 통한 변화를 기획할 수 없고, 늘 작은 일에도 분열하고 서로를 믿지 않는다. 마을의 자율이 사라진 자리만큼 국가는 더 커졌는지도 모른다.

북미 인디언 사회는 집단의 의지를 갖고 ‘국가를 만들지 않았던’ 사회이다. 북미 인디언 사회는 미국 국가와의 대결에서 무너지는 순간까지도 국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국가에 권력을 위임할 경우 ‘마을과 부족의 자율’이 심각한 침해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마을 공화국이라는 사회 체제로 미국 국가와 대결했다. 북미 인디언 사회가 마을의 자율에 그렇게 집착했던 이유는 개인과 집단의 문제를 자신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어야 개인의 인격이 성숙하고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북미 인디언 사회가 가졌던 마을 주권 의식을 현대에 그대로 적용하는 한계를 인정하더라도 그 의미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국가의 흐름이 보수이든, 진보이든 상관없이 튼튼한 마을의 자율성과 개인의 성숙이 따라야만 우리가 꿈꾸는 사회적 변화가 가능하다. 북유럽 복지국가들이 복지국가가 된 것은 진보적 정권이 권력을 잡아서 된 것이 아니다. 진보 정부든 보수 정부든 거스를 수 없는 사회적 흐름을 북유럽의 선각자들이 만들어 내고 국민 개개인이 그 가치를 내면화해서 성숙했기 때문에 실현한 것이다. 국가 규모의 선거 이전에 마을 단위, 작은 공동체 단위의 자율적 삶의 실험이 더 깊어져야 우리 사회의 퇴행을 근원적으로 막을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국정 운영에 실패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우리 마을에서 진보적 실험을 꾸준히 해야 한다. 김재형 죽곡농민열린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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