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아닌 ‘감동과 재미’ 있는 책읽기부터

아이들의 공부를 지도하다 보면 늘 같은 문제점이 나타난다. 국어를 못하는 아이는 물론 수학을 못해도, 사회를 못해도, 과학을 못해도 심지어 영어도 결국은 ‘읽기’가 문제일 때가 많다. 비단 문제지의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읽기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료를 조사하고 정리하고, 주어진 문제 상황을 파악하고 해결해 나가는 등의 거의 모든 학습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읽기를 포함한 ‘언어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언어능력을 키우는 방법이 뭘까.

아이들의 공부시간을 알아보면 언어 능력을 키울 수 있는 독서 시간이나 대화를 나누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고(아예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학력을 높이기 위해서 영어 단어 외우기, 수학 문제 풀이, 과학 사회 지식 외우기에만 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해 단기적으로 점수를 올릴 수 있을지는 몰라도 아이들에게는 지겨운 공부와 이해 못 할 문제 푸는 요령만 남을 뿐이다.

듣고 말하기는 학습 능력의 기본이다. 하지만 끝까지 듣지 않고 먼저 행하는 아이들이 정말 많다. 이렇게 행동하는 아이들의 대부분이 실수가 잦고 정답을 써 넣는 빈칸에 자기 짐작대로 채워 넣어 빨리 끝내는 데만 신경 쓰는 경우가 많다. 교사의 말이든 친구의 말이든 제대로 듣지 않았으니 말하기 역시 상황과 벗어난다. 이런 아이들의 글이 감동적이기는 어렵다. 자기 생각을 글로 잘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들 역시 수학의 풀이 과정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

읽기는 더 이상 예를 들 필요도 없을 것이다. 수많은 아이들이 글로 된 과제나 자료를 제시했을 때 방금 전에 같이 얘기를 나눴는데도 읽으면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라고 질문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어려운 낱말이 나오는 문제도 있지만 읽기 능력이 충분한 아이들은 앞뒤 문장을 읽고 짐작하면서 이해가 가능하나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뜻도 모른 채 그냥 외운다. 그러니 적용력은 기대할 수가 없다. 또 어려운 낱말이 없다 해도 문장 자체를 이해하지 못해 다시 말로 풀어 설명해 주거나 심지어 똑같이 그대로 소리 내 읽어줘야만 알아듣기도 한다.

지금부터라도 언어능력을 키우자. 실제로 아이들의 삶에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언어능력이다. 자기의 생각을 바르고 정확하게 표현할 줄 모르고, 다른 사람의 말과 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소통도 할 수 없다.

그러려면 먼저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말할 수 있고 아이도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줄 수 있다. 가족이 가장 먼저 그 역할을 해야 한다. 아이가 다가와서 학교 이야기를 하거나 연예인 얘기를 할 때 시끄럽다고 면박을 주거나 그만 떠들고 들어가서 공부하라 할 것이 아니라 일부러 시간을 정해서라도 아이와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때때로 감탄도 하고 왜 그랬을까 되물어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언어능력을 높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역시 책읽기다. 듣기, 말하기와 같은 언어능력은 그나마 아이들이 살아가면서 굳이 연습하지 않아도 놀면서, 밥 먹으면서, 교실에서 듣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읽기는 그렇지 않다. 일부러 찾아 읽어야 한다. 모든 교과서와 학습 자료는 글로 돼 있으니 이것이라도 열심히 읽으면 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도 않은데다가 재미가 없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니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글자’를 읽을 뿐이다. 시, 동화, 인물이야기, 그림책과 같은 책들은 ‘글자’뿐 아니라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다. 대화 나누기가 어려울 때도 이런 책을 읽어주면 수월하다. 책을 읽어주면 읽기는 물론 저절로 듣고 말하기가 된다. 이것이 충분히 되면 쓰기는 자연스럽게 된다.

책읽기는 지금 바로 점수를 높이지는 못하더라도 아이의 인생에는 더 큰 영향을 준다. “나를 키워준 곳은 우리 마을의 도서관이다”고 한 빌 게이츠를 비롯해 책에서 꿈과 인생을 배운 훌륭한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대부분이 책을 쓰고 달변가이며 어마어마한 독서가다. 당장 눈에 보이는 학력을 높이기 위해 언어 능력을 뒤로 미룬다면 아이들의 길은 그보다 훨씬 더 뒤로 미뤄질지도 모른다.

오은경 선생님은 경북 울진에서 15년째 교직에 재직 중이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큰 아이와 갓난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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