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초한 가을이 지속되면서 남도의 들녘에선 벼베기가 가속도를 내고 있다. 저 많은 벼를 언제 다 베어낼까 걱정했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최근 며칠사이 그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그런데 올핸 벼베기가 끝난 논이 그 어느 해보다 쓸쓸하다. 수확의 기쁨에 풍성한 가을을 기대했지만 반토막도 건지지 못한 경우가 부지기수다. 벼 이삭이 제대로 여물지 못하고 쭉정이로 변하는 백수피해 때문으로, 지난 8~9월 세 번이나 찾아온 태풍이 가져온 결과다. 통계청에서도 전남지역 쌀 생산량이 전년대비 12% 감소할 것이라는 예측결과를 발표했다. 그런데 농민들이 생각하는 피해는 그 이상이다. 통계청 발표는 전남 전역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백수피해는 주로 전남 서남해안권을 중심으로 발생했다.

문제는 태풍피해 조사당시 피해가 없을 것으로 보였던 논들까지 그 피해가 확산일로다. 이삭이 제대로 여물지 못하면서 수확 후 건조와 도정과정을 거치면 싸래기로 변하기 때문이다.

결국 일부 농가에선 기름값도 나오지 않는다며 논을 그냥 갈아엎는 경우까지 있다. 차라리 보리나 조사료 등 월동작물이라도 심겠다는 판단에서다. 지금 피해농가에 필요한 것은 생계대책이라도 세울 수 있는 실질적인 보상이다. 농작물재해보험도 현실성 있게 바꾸길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실제 이번 피해농가 중 상당수가 보험에 가입했지만 보상금을 기대하기 힘들다며 청구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장기적으로 새로운 작부체계도 고민해야 한다. 8~9월 태풍 등 기상변화에 맞게 자연재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작부체계와 신품종 연구가 병행돼야 할 것이다.
최상기choisk@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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