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꽃 피고 감나무엔 새싹… 앙상한 가지 계절감각 실종

나주시 봉황면 장성리 일대 배 과수원에서 김향종(82) 씨가 배꽃을 근심어린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태풍 후폭풍이 심상치 않다. 배나무에 때이른 꽃이 피는가 하면 마땅한 대체작목을 찾지 못한 제주도에서는 월동무 재배가 늘어나 자칫 과잉생산이 우려된다.

종족번식에 영양분 사용 추정
농가 “내년 농사까지 걱정” 울상


연이은 태풍으로 이미 만신창이 된 전남지역에서 이상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봄에나 피어야 할 배꽃이 피고, 감나무에선 새싹이 돋아나고 있다. 농민들은 내년 농사까지 망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문제가 가장 심각한 것은 바로 배 과수원. 국내 최대 배 생산지인 나주를 비롯해 영암, 신안 등 전남도내 배 주산지에선 요즘 하얀 꽃망울을 터트린 배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수확을 코 앞에 두고 3번의 태풍이 연속으로 강타하면서 배와 잎은 모두 떨어지고, 마치 한겨울처럼 앙상한 가지만 남은 배나무에 ‘불시개화(때가 아닌데 꽃이 피는 현상)’ 현상이 시작된 것이다. 이런 현상은 인근 영암과 신안의 배 과수원에서 먼저 관찰됐으며, 나주 지역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보통 불시개화 현상은 1년생 가지에서 목격되는데 올해엔 2~3년생 가지에서도 꽃이 핀다. 이 때문에 강풍을 동반한 태풍에 나뭇잎이 떨어지자 나무들이 계절감각을 상실하면서 꽃을 피운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 같은 현상이 배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장성 등 감 주산지에서도 앙상한 가지에서 새싹이 돋아나고 있으며, 보성 참다래도 똑같은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제주 대파작물로 월동무 선호
과잉생산 우려 목소리 높아져


제주도에서는 3개의 태풍으로 농작물이 물에 잠기거나 유실되는 피해를 입은 농가가 많은 가운데 월동 무를 대파작물로 선호하는 농가가 많아 자칫 과잉생산이 우려된다. 최근 제주특별자치도에 따르면 지난 18일 태풍 산바로 인해 4109농가의 5264ha의 농경지가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정확한 피해금액을 산정할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한 지역의 농작물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태풍 피해를 입은 농가들은 다시 한해 농사를 준비하면서,  대부분 월동 무를 대파작물로 선호하고 있어 과잉생산의 위험성이 큰 작물로 꼽힌다. 실제로 지난해만 해도 월동무가 과잉생산 되면서, 월동무의 가격이 수익 마지노선인 8000원의 절반도 되지 않은 3200원까지 떨어진 바 있다. 하지만 파종시기를 고려했을 때 농가들이 선택할 수 있는 대파작물은 그리 많지 않다. 당근이나 마늘 등은 파종시기를 놓쳐 이 시점에 심으면 겨울철을 넘기지 못할 공산이 크다.

강원홍 한농연제주도연합회 정책부회장은 “유채나 맥주보리, 메밀 등의 일반 밭작물을 대파하는 것도 방법 중 하나지만 농사방법도 다르고 손이 많이 간다는 부담이 있어 망설이는 농가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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