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위한 공간, 학교

죽곡농민열린도서관에서는 매년 여름과 겨울 농민인문학이라는 이름으로 공개 강좌를 연다. 이번에 다녀가신 강사 중에 ‘기덕문 선생님’이 있었다. 21살에 첫 교사를 시작해서 정년퇴임을 하신 원로 교육자이신데, 죽곡이 고향이시다. 교직 생활 초기 7년을 죽곡초등학교 교사로 지내셨는데, 이분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꼭 꿈꾸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왜냐면 60년대 농촌 초등학교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학교라기 보다는 ‘농촌의 교육 문화 센터’라는 느낌이 더 많이 들기 때문이다.

‘죽곡면의 교육과 문화를 기획하는 죽곡농민열린도서관’이 우리의 목표인데, 60년대 초등학교는 ‘학생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마을을 위한’ 공간이었다. 우리 도서관에 아이들이 많이 오지만 이곳을 ‘마을을 위한’ 곳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과 공부는 농촌 마을과 분리돼 있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마을에 도움을 주고, 마을은 학교의 든든한 기반이 돼 줬다. 학교에서 땅이 필요하면 땅을 내어 주며, 학교에서 하는 행사에 마을 주민들이 같이 마음을 내어 참여하고, 학교 운동회는 마을의 잔치였다. 지금도 기꺼이 마을에서는 여러 장학 기금으로 학교와 학생들을 돕고 있다.

그러나 학교는 어떨까? 학교는 마을에 관심이 없다. 교육청에서 돈을 많이 지원하면 할수록 학교와 마을은 멀어진다. 돈이 없을 때는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 해결했지만, 돈이 들어오고 나면 학교의 일은 전문가들의 영역이 된다. 무엇보다 마을 주민들이 그걸 원한다. 우리 아이들은 나처럼 농사짓지 않고 다른 삶을 살길 원하는 부모들이 마을과 학교가 멀어질수록 좋은 학교가 된다고 생각한다.

어떤 일이든 달이 차면 기울듯이 변화가 시작된다. 농촌 마을은 무지하므로 마을과 학교가 분리 될수록 좋은 학교가 된다는 생각도 이제 찰만큼 찼다. 마을과 학교가 이어져야 좋은 학교가 된다는 생각이 시작되는 것이다. 씨를 뿌리고 나무를 돌보는 일이 아이들의 공감 능력과 생태적 감성을 기르는데 좋은 공부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다양한 방식으로 마을과 학교를 잇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농촌에 빈집이 많지만 빈집을 얻으려고하면 쉽게 얻질 못한다. 이미 도시는 포화 상태고 도시 유입 인구는 줄어들기 시작했다. 도시로 들어오는 사람보다 나가는 사람이 더 많아진 것이다. 이런 현상과 함께 농촌에서는 마을을 건설하는 흐름이 생기고 있다. 죽곡에도 ‘강빛마을’이라는 이름으로 100세대의 마을이 새로 건설되고 올해 안에 입주가 시작된다. 나는 ‘선애빌’이라는 마을 공동체에 자문을 하고 있는데 선애빌 공동체는 아이들부터 어른까지 200여명이 같이 마을을 만들었다.

마을을 만들면서 선애빌 가족들이 중요하게 시도한 것 중의 하나가 마을학교인 ‘선애학교’다. 마을과 학교를 통합해서 삶과 공부가 분리되지 않는 교육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삶과 교육이 분리되지 않으면서 삶과 분리된 커리큘럼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는 삶이 그대로 공부가 된다. 학교가 성장하는 것과 내 삶이 풍요로워 지는 것이 서로 이어져있다. 60년대 어느 농촌 마을에서나 볼 수 있었던 마을과 학교의 모습이 우리 시대에 다시 살아나고 있다.

김재형 죽곡농민열린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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