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대응할 힘 ‘지혜’

한 사회가 정점에 도달하면 그 힘이 강해 보이지만 사실은 후퇴의 시작으로 보는 게 미래를 제대로 읽는 경우가 많다.

한국은 지난 6월 23일 통계청에서 인구 5000만명이 됐다고 발표했다. 인구 5000만을 해석하는 다양한 관점이 있었는데, 크게 봐서 이제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에 진입하게 됐다는 해석과 고령화 사회의 덫에 빠지게 된다는 비관적 전망으로 나뉜다. 낙관적이든 비관적이든 공통된 관점은 인구 5000만에서 한국 사회의 인구는 더 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점에 도달한 것이다.

이것 말고도 사회의 정점을 드러내는 지수는 많다. 석유 정점은 이미 너무 많은 논의가 있어서 더 말할 필요조차도 없다. 삼성 공화국의 정점도 이제 거의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복수노조 체제에서 삼성은 더 이상 무노조 경영을 할 수 없고, 삼성의 국가 지배를 영화로 만든 ‘돈의 맛’ 같은 영화는 칸 국제 영화제에 초대돼 세계인에게 드러났다. 더럽고 추함이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실제는 영화보다 더할 것이다.

제주 강정마을에서 삼성과 대림이라는 기업을 통해 국가가 관철하고자 하는 제주 해군기지도 군국주의 사회의 정점을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이다. 아마 다음 정권에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군사력 확대는 더 이상 불가능할 것이다.

문제는 정점에 도달한 이후의 사회다. 대략의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고령화 사회, 제로 성장, 농업·농촌의 회복이다. 도시가 성장 동력을 잃고 나이 많은 다수의 실업 인구가 뭔가 의미 있는 일을 찾을 때 농업과 농촌 삶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을 쉽게 찾을 수 없다.

얼마 전 중국 산둥성의 농촌 마을과 시골 5일장을 돌아보는 기회가 있었다. 한국만 정점에 도달한 것이 아니라 중국도 정점에 도달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중국은 아직 농촌의 활력이 남아 있었다. 한국의 80년대 정도라고 봐진다. 결국 이상적 사회는 공업의 활력과 농업의 활력이 공존하는 사회이다.

중국은 공업과 농업의 균형 상태에서 사회 조정이 시작될 것 같았다. 약간의 조정만으로도 제로 성장 사회를 준비할 수 있지만, 한국은 급격한 변화를 거쳐야 할 가능성이 높다.

변화의 시기를 대응하는 힘이 ‘지혜’이다. 중국의 농부들은 5000년간 이어온 그들 삶의 방식을 아직 놓지 않고 있었다. 중국의 농촌 마을과 시골 장에서 만나는 농부들에게서 삶의 오랜 지혜와 경륜, 문화적 힘, 삶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의 농촌에서 만나는 70대의 농부들은 처음으로 비료, 농약, 제초제를 쓴 화학영농 세대이고 한국의 농부들은 오래된 지혜와 대부분 단절됐다.

정점에 도달한 사회는 변하게 되는데 변화를 이어줄 지혜는 없다. 어쩌면 우리가 맞을 진정한 위기는 ‘오래된 지혜’를 잃은 것일지도 모른다. 지혜 없이 맞게 되는 급격한 변화는 대부분 재앙이다. 김재형 죽곡농민열린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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