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양부 부산대 석좌교수·농업통상대사

인류가 지구상에 모습을 나타낸 이후 일용할 양식을 넉넉하게 확보하기 위한 생존을 건 인류의 싸움은 1만여년 전 농업을 발견한 이후 지금까지 농업화, 산업화, 지식정보화라는 문명의 전환과 함께 치열하게 지속되어 오고 있다. 1만여년 간 지속되어온 농업은 새로운 문명 전환과 함께 ‘적응이냐 죽음이냐’라는 ‘적자생존’의 냉엄한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혁신이냐 죽음이냐’의 선택을 요구하는 ‘혁자생존’의 절박한 현실에 처하게 되었다. 농업계에 불어 닥친 ‘혁신바람’ 우리 농업과 농촌과 농민은 지금 지구상의 어느 나라도 경험한 적이 없는 서구사회가 300년에 걸쳐 경험한 변화를 30년으로 압축한 급격한 산업화의 충격과 세계화, 정보화의 충격을 동시에 받으면서 혼란과 모순 속에서 급격한 해체와 자기 변혁의 길을 겪고 있다. 농경사회적 가치가 여전히 온존하고 있는 상태에서 산업사회적 경제사회규범과 지식정보사회적 요구와 지향이 서로 충돌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농경사회적 가족적 생계농업과 농가의 해체가 일어났고 농촌과 마을의 공동화가 가속되고 있다. 급격한 문명전환에 대응하지 못하는 소농들은 변화하는 시장에의 접근성 상실로 소외되고 고립된 채 빈곤의 함정에 빠지고 있다. 농업은 새로운 문명전환에 적응 성공한 농업과 실패한 농업으로 극명하게 양극화 되면서 성장농업과 쇠퇴농업, 성장지역과 쇠퇴지역이 나타나게 되었고, 그에 따른 농가들의 소득양극화가 발생하게 되었다. 이러한 적응과 자기혁신의 실패는 농가와 농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궁극에는 농업기관, 단체로 이어지고 있고, 농고 농전 농대 등과 같은 농업교육기관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농고와 농전이 사라지고 농대가 없어져가고 농과계열학과들이 간판을 바꿔달고 통폐합되고 있는 것들도 모두 이러한 적응과 변화의 실패를 반영한 것들이 아닌가 생각한다. 최근에는 농림부마저도 변혁되지 않으면 간판을 내려야 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소비자 중심’ 농업으로 급변 이러한 혼란스러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농업에 대한 우리들의 발상과 상상력이 과연 어떠한 문명적 틀과 가치위에 서있는 지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농경사회적이고 산업사회적인 비전이나 가치를 지식정보화와 세계화의 틀에서 다시 따져보아야 한다. 우리 농업인들은 대체로 당대에 농경사회가 산업사회로 그리고 지식사회로 격변하는 문명전환을 몸으로 체험해 왔으며, 그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고 가치와 생각에 논리의 모순과 일관성 상실을 경험하고 있다. 모두가 문명 따라잡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러한 문명전환에 적응하지 않고서는 어떠한 농업도, 농학자도 사회적으로 존립할 수 없다는 점이다. 특히 지식정보사회는 유능하고 개성 있고 감성적인 소비자들이 시장을 주도하는 사회이다. 개성적인 소비자들의 농식품에 대한 수요는 탈지역화, 탈계절화, 세계화 하고 있으며 그들이 행사하는 구매력 파워가 농업의 향방을 결정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 농업도 소비자를 위한, 소비자에 의한 ‘소비자 시대의 농업’이 되었다. 농업은 소비자 만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생산자중심, 국가중심농업을 고객(시장)중심, 세계중심농업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낡은 의식·가치관 벗어나야 생존 오늘의 막막하기만 한 농의 역사적 현실 앞에 서서 우리들의 농경사회적 낡은 의식과 가치가 우리 농업의 발목을 잡고, 지식정보사회의 새 질서에 적응 변신하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우리가 쏟아 내 놓고 있는 많은 주장과 의견들이 오히려 시대변화에 역행하는 것들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혹시라도 우리들의 농업적 상상력의 빈곤이 오히려 농의 문제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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