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천하는 흑룡처럼…올해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비상”

[한국농어민신문 김경욱ㆍ안병한 기자] 

60년 만에 찾아온 흑룡의 해, 임진년 새날이 밝았다. 용은 예로부터 우리네 삶은 물론 농업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농경민족에게 생명과 같은 물을 지배하는 것으로 여겨온 용은 신앙의 대상이기도 했으며 농가에선 음력 6월 15일 유두일이 되면 풍년을 비는 용신제를 벌이기도 했다. 또한 위인과 같은 위대하고 훌륭한 존재를 용에 빗대 표현해오고 있다. 이러한 용띠의 기운을 안고 태어난 용띠 출신 농업인들을 만나봤다. 이들은 자신의 해인 임진년 올 한해가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끝나는 것이 아닌 한 단계 더 도약하는 등용문(登龍門)이 될 것이라는 확신에 차 있다.

자신들의 해를 맞은 젊은 부부의 농업에 대한 열정은 난로 속 열기보다 더 뜨겁다. 부모님을 모시고 아이들을 키우며 인천 중구 무의도에서 실미원(www.silmiwon.co.kr) 농장을 운영하는 이들 부부의 행보가 농업의 새로운 비전으로 다가오길 기대해본다.

#스물다섯 동갑내기 부부 신지용·최은숙 씨
“농업 비전, 내 아이에게 대물림되길 소망”


88만원 세대로 대변되는 이십대, 그리고 그 중간에 서 있는 스물다섯. 서울올림픽이 열린 해였던 1988년 태어나 12간지를 두 번 돌아 이제 다시 자신의 해를 맞은 스물다섯의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해가 돌아온 것에 대한 감흥은 어쩌면 사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1000가구도 살지 않는 인천의 한 조그만 섬에는 올해 스물다섯이 된 청춘남녀가 농업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하며 따듯한 둥지를 틀고 있다. 인천과 부산이라는 너무나 먼 거리에서 생활했지만 한국농수산대학에 입학해 캠퍼스 커플이 되고 부부의 연까지 맺게 된 스물다섯 동갑내기 용띠부부 신지용·최은숙 씨가 그 주인공. 이들 젊은 용띠 부부는 농업의 비전을 스스로 만들어가며 이제 5살, 3살이 된 자신들의 아이들에게 그들의 비전이 대물림되길 소망하고 있다. 이들 부부의 희망가를 전해본다.

이들 부부가 사는 곳은 인천 무의도. 10여 년 전만 해도 인천연안부두에서 2시간의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섬이었지만 이제는 육로길이 닿는 선착장에서 5분만 배를 타면 진입하는 거리가 됐다. 일반인들에게는 바로 옆에 붙어있는 실미도가 영화로 인해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이곳에서 이들 부부는 부모님을 모시며 3만3000㎡(1만평) 규모의 연꽃과 포도밭을 자연순환농법으로 재배하고 있다. 이렇게 재배된 농산물을 활용해 친환경 가공제품을 만들고 있고, 실미원이라는 농장에선 체험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내년엔 아이리스원도 개원할 예정이다.

이 중 남편 신지용 씨는 생산을 맡았다.

신지용 씨는 “인위적인 기법을 투입하지 않고 자연순환을 통해서도 충분히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고 그 농산물이 고품질이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며 “내년엔 아이리스원도 개원해 해수욕장과 갯벌, 등산코스 등 볼거리가 많은 무의도에 또 하나의 볼거리를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런 신 씨의 더 큰 꿈은 와이너리를 만드는 것이다.

신 씨는 “우리나라에도 외국 못지않은 와이너리가 있길 바라는 게 꿈이었다”며 “직접 재배한 포도를 포도주나 잼 등 가공품으로 만들고 도시의 어린이들이 이를 직접 체험하며 농촌을 알아갔으면 하는 게 바람”이라고 설명했다.

연꽃·포도 순환농법 재배
친환경 가공제품 만들고
농장 체험 프로그램 운영
연 순수입 5000만원 넘어
와이너리 설립 ‘부푼 꿈’


신 씨의 파트너, 아내 최은숙 씨는 남편이 생산한 농산물의 가공·마케팅을 맡고 있다. 최 씨는 친환경 음식과 한식, 전통식품 등 우리의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결혼과 함께 이 부분을 맡으며 자신의 꿈까지 함께 자라게 하고 있는 것.

이들의 한 해 수입은 1억 원을 넘어섰고 이 중 절반이 순수입이다. 이런 이들에겐 작지만 값진 또 하나의 소망이 있다.

이들 부부는 “아들 기훈이와 딸 영주가 나중에 커서 우리의 일을 이어갔으면 좋겠다”며 “물론 아이들의 진로를 강요하지는 않겠지만 도시 못지않은 비전이 농촌에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신지용 씨는 덧붙여 “어렸을 적 아버지가 농업인으로 당당히 신지식인에 선정되고 자연순환농법 등으로 농업에서 스스로 비전을 개척하시는 것을 보고 너무나 자랑스러웠고 농업인이라는 꿈을 갖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며 “나 자신도 우리의 아이들에게 그런 아버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20년 후엔 이들 부부의 아들 기훈 군이 지금 현재 이들 부부의 나이인 스물다섯이 된다. 그때 다시 자신의 해를 맞은 젊은 농업인이자 농업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하는 아름다운 청년이 돼 있을 기훈 군을 만나 지면에 소개할 수 있길 고대해 본다.

김경욱 기자 kimkw@agrinet.co.kr


정송기 씨는 농업인들의 자신감 회복이 개방파고를 넘는데 가장 중요하며 정부는 농사지을 수 있는 환경조성에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테랑 농사꾼 정송기 씨
“한·미 FTA 파고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돌파”


“한숨만 내쉰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요.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새로운 품종도, 새로운 재배기술도 아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60년만에 흑룡이 찾아왔다는 2012년 임진년을 준비하는 베테랑 용띠 농사꾼 정송기(49·담양군 무정면 오룡리) 씨의 힘찬 다짐이다.

현재 정 씨는 하우스 1만890㎡(3300평)에 벼농사 3960㎡(1200평)의 영농규모를 자랑한다. 하우스 농사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자신감을 갖고 있다.

UR협상 타결…승부 결심
방울토마토로 전환 대성공
FTA 발효땐 오렌지 물밀듯
대추형 노란토마토 등
품목 다변화로 위기 극복


첫 시작은 미약했다. 폭 6m짜리 소형 하우스 2동(360평)에서 2년간 딸기농사를 지으며 도시보다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고 한다. 하지만 처음 농사일을 시작하면서 시행착오도 여러번 겪었고, 작목도 완숙토마토로 바꿨다.

그러던 중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UR(우르과이라운드)협상 타결소식이 들렸다. 그때 정씨는 정면돌파를 결심했다. 농사짓기로 마음먹은 만큼 농사일로 승부를 겨뤄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과감한 작목전환을 시도했다.

여러 가지 품목가운데 방울토마토를 선택했는데, 당시엔 생산자인 농민은 물론 시장에서도, 소비자도 생소한 품목이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완숙토마토에 익숙했던 시기에 방울토마토는 새로운 혁명과도 같았다. 당시 5kg 한박스당 최고 4만1000원까지 받았고, 일년농사를 결산해보니 평균 2만1000원에 판매했다. 정 씨는 “방울토마토 2박스만 팔아도 난방용 경우 1드럼(200ℓ)을 살 수 있을 정도”라며 “그런 성공을 바탕으로 농업규모를 과감히 늘려갔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지금은 10박스를 팔아도 기름통을 제대로 채우지 못할 정도다. 처음 방울토마토를 재배할 때 2310㎡(700평) 규모의 하우스에서 시작했는데, 면적이 늘어 지금은 1만890㎡(3300평)로 증가했지만 소득은 늘 제자리걸음이다.

이 같은 결과는 정부의 잘못된 농정에 기인한다는 것이 정 씨의 생각이다. 정 씨는 “정부도 농민들에게 보조금 몇 푼 쥐어줬다고 마치 자기 할 일을 다 한 것처럼 말해선 안된다”고 일침을 놓았다.

어느 작물이 얼마나 생산되는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정도인데, 농산물 수급조절은 물론 가격안정이 이뤄질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소득이 안정되지 못하다보니 농촌을 떠나는 사람이 늘고, 결국 빈곤의 악순환만 되풀이되는 것. 그 연결고리를 끊어내는 것은 정부가 해결해야 할 과제라는 것이 정 씨의 생각이다.

정 씨는 “소득보전직불제나 밭농업직불제 등 그동안 농민들이 주장했던 내용에 귀 기울이지 않던 정부가 이제와서 선심 쓰듯 그런 정책을 하나씩 내놓고 있다”며 “정부는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며 농민들이 농사지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정 씨는 올해 미국산 오렌지와 승부에서 꼭 이기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방울토마토가 생산되는 시기에 미국산 오렌지가 밀려온다”며 “예전처럼 그저 신토불이(身土不二)에 호소하는데 그치지 않고, 맛과 품질로 정면승부를 펼쳐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미 인근 60여 농가와 대숲연합사업단을 구성해 공동출하를 하고 있는데, 비록 여건은 힘들지만 해보자는 의지가 대단하다.

아울러 정 씨는 “한·미FTA는 품목의 다변화로 돌파구를 마련할 생각”이라며 “올해부터 대추형 노란토마토, 가공용 완숙토마토 등 다양한 품목을 재배해 시장교섭력을 키워가겠다”고 밝혔다. 정 씨의 말처럼 완숙토마토의 경우 소비패턴에 큰 변화가 생겼는데, 예전처럼 생과로만 먹다가 요즘엔 패스트푸드 등 가공용 수요가 급증하는 추세다.

아울러 정 씨는 “지금처럼 막무가내식 개방은 일부 선택된 농민 몇 명을 제외한 전체 농업엔 치명타”라며 “UR협상때와 지금의 한국농업은 큰 변화를 했지만 세계농업과 비교해선 아직도 걸음마 수준”이라며 내실있는 농업육성을 주문했다. 끝으로 “농사를 시작한 이후 후회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없다”며 “지금껏 그랬듯 앞으로도 ‘농사꾼’이라는 내 직업에 더욱 당당해지며 2012년도 힘차게 열어갈 생각”이라고 마무리했다.

안병한 기자 Ahnbh@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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