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숙 여성민우회 생활협동조합 이사장

지난해 여름 유럽 몇나라의 농업현장을 둘러 볼 기회가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같은 곳을 방문했을 것이고 별로 새로울 것도 없을지 모르지만 십수년간 도시소비자와 농촌생산자 사이를 오가면서도 ‘농민의 삶이 별로 나아지지 않는다’라는 생각이 항상 큰 짐으로 남았었는데 도시민과 농민의 삶이 별개가 아니라는 점에서 생각을 키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1. 농촌은 국가의 근본 어디를 가도 잘 정돈된 초지, 나는 그 풀밭만 봐도 멀미가 날 정도로 금방 식상해 버렸지만 그것을 경관보전이라하여 경관보전직불금을 주고 관광소득으로 연결시켜, 찾아가고 싶은 농촌, 항상 손님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 농촌을 만들고 있었다. 이들 나라에서는 국민 대다수가, 농민이 농촌에 사는 것 자체가 국가자원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다. 농촌에 살면서 전통을 지키고 환경을 보전하며 국토경관을 가꾸는 농민들에게 보조금을 주면서 농업과 농촌을 유지 발전시켜야한다는 공감대 즉, 도농상생의 철학이 깊이 스며들어 있다. 정권과 농정책임자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농업농촌의 다원적 기능에 대한 합의를 바탕으로 농민들은 도시민보다 상대적으로 소득은 적을지라도 국토지킴이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간다. 국토균형발전이나 농민의 삶의질 향상을 위해서는 도시기능의 분산, 기업도시건설, 농어촌 복지시설 확충 등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국토환경보전 측면에서 농업농촌의 다원적 기능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먼저 형성되어야 한다. 2. 소규모 가공산업과 판매장으로 활력 찾기 돼지들이 풀밭에서 놀고 있다. 자돈을 생산하는 이 농가는 늙은 돼지는 햄, 소시지로 가공하여 찾아오는 손님에게 판매하는 것으로 짭짤한 소득을 얻고 있다. 감자, 고추 등 야채를 생산하는 농가는 여러 품종을 심어 소비자들이 기호에 맞춰 사가도록 한다. 농장 한 켠의 판매장은 이 집에서 나오는 신선한 농산물과 가공품을 판매하고 있다. 민박을 하면서 자기 집에서 나오는 원료을 가지고 치즈, 버터, 사과쥬스, 사과주 등을 생산 판매하는 농부는 “나는 소의 젖을 짜지만 집사람은 휴양객의 주머니를 짠다”라는 농담을 하면서 지하의 작은 가공시설을 보여 주었다. 포도 농장을 운영하면서 민박을 하고 있는 한 농가는 각양각색의 포도주로 잠시 들른 우리의 입도 즐겁게 해 주면서 수십병의 포도주를 팔았다. 아주 작지만 청결하게 관리하고 철저히 기록하는 체계로 가공시설을 운영하도록 한다. 때를 가리지 않고 가공품을 사 가는 소비자들의 눈이 가장 무서운 감시기구가 된다. 일정정도의 규모와 시설을 갖추어야만 가공시설로 인정을 받을 수 있고, 소비자의 접근을 막는 우리 현실과는 다른 모습이다. 신선한 원료로 자신만의 노하우로 만들어내는 다양한 농산물과 가공품을 생산하고 판매할 수 있는 농가형 가공과 직판장이 농가의 소득을 지탱하면서 전통이 깃들은 생산물에 가치를 부여해주는 소비자와의 끈을 이어주고 있다. 최근 들어 그린투어리즘이다, 농촌체험이다, 전통테마마을, 팜스테이 등 도농교류라는 이름으로 많은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지만 물과 기름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고 농가소득과도 연결이 되지 않는다. 소규모 농가형 가공과 직판장운영으로 이런 사업들이 생산물을 매개로 한 실질적 도농교류 효과가 나타나게해야 할 것이다. 3. 전문농업인 육성 126년 동안 농민 교육을 해 왔다는, 옛날 어떤 영주의 성을 개조한 농업학교는 꽤 엄격한 교육체계를 통해 농민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기술에서 시작해서 목수, 기계공 등 전문직업인이 가질 정도의 기술에 도달할 때까지 교육을 시킨다. 교육을 이수한 사람에게만 농민자격증을 주고 보조금을 지급하는 체계는 사회적으로 농업인을 전문직업인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여성농업인도 예외는 아니다. 2년 동안 매주 금요일마다, 젖짜기 등 농사일 이외에 민박시설 운영 및 손님 응대요령, 요리, 재단, 부기, 법률 등 농업과 가정경영에 필요한 실질 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취득했다는 젊은 주부는 전문직업인으로서의 자신감을 보여주었다. 농촌에서 살고 싶어하는 여성에게도 적응훈련을 한다. 이 이야기를 들은 한 후배는 “내게도 그런 교육을 받을 기회가 있었다면 남편만 믿고 시골로 와서 이런저런 어려움에 어떻게 죽을까만을 고민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부러워하였다. 유럽국가들이 이처럼 농업전문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원동력은 농업·농촌·농민을 보호·육성하겠다는 국민적 공감대와 직업교육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었기 때문이다. 4. 축분뇨로 대안 에너지 개발 독일 축산농가들은 유럽통합 이후 공급과잉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제는 축산분뇨를 활용하여 대안을 찾아가고 있다. 축산분뇨에 옥수수와 목초 사일리지를 넣어 메탄가스를 발생시켜 만든 전기를 팔아 소득을 올린다. 정부에서는 이 전기를 비싼 값에 사 주고 이러한 에너지 생산을 법으로 적극 지원하고 있다. 대안에너지 생산을 적극 육성하고 있는 국가정책으로 이제 유럽 농촌은 단순히 환경을 지킬뿐 아니라 대안도 만들어가는 희망의 땅이 되고 있다. 농업의 다원적 기능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농촌에 대한 사랑, 농민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농촌은 많은 문제가 집약된 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고 실현하는 삶의 공간이 되고 있는 것이다. 몇일 동안의 짧은 경험이었지만 유럽과 같은 농촌사랑에 기초한 농업 정책이 펼쳐지기를 새해를 맞아 소망해 본다.
한국농어민신문webmaster@agrinet.co.kr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