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숙 여성민우회 생활협동조합 이사장

가을걷이가 끝나고 들녘은 조용하다. 버스가 올 시간이 되자 여기저기서 허리가 꼬부라진 할머니들이 모여든다. 여름내 논밭에서 힘들게 일하고, 이제 할머니들이 말하는“병원에 출근해야”하는 시기가 되었다. 저마다 좁은 읍내에 있는 병원, 한의원을 전전하면서 하루 혹은 반나절을 보내고 들어온다. 내가 살고 있는 시골 동네의 모습이다. 지난 3월에는 군전체의 출생신고가 3건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정말 시골은 여성들에게 별로 환영받을만한 곳이 못된다. 여성농업인들은 스스로 “인구는 70%, 하는 일은 90%인데 대접은 10%밖에 안된다”고 말한다. ○제2차 육성계획 탁상공론 될라 정부가 마련하고 있는 제2차 여성농업인 육성 5개년 계획이 내년부터 실행된다. 1차 계획의 성과와 과제를 바탕으로 수립한, 앞으로 5년동안 여성농업인의 삶의 질을 규정할 기본적인 구상과 대책이 들어 있다. 여성농업인의 지위향상, 전문인력화, 소득지지, 복지증진, 농촌지역 양성평등 문화 확산, 이를 위한 정책인프라 구축 면에서 다양한 대책과 구체적 추진방안이 모색되고 있다. 2차계획에서 가장 두드러진 내용은 여성농업인을 직업인으로 규정하고 경영의 주체로 보는 동시에 사회적으로도 직업으로서의 위상을 공고하게 만들겠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들의 기여에 따라 노동보수와 자산취득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고 사회보장의 수혜자가 될 수 있게 한다는 것으로 여성농업인의 권리찾기에 큰 몫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시점에서 여성농업인의 경력을 직업경력으로 인정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도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이미 유럽 여러나라와 일본 등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인데 우리 실정에 맞게 보완되겠지만, 실제 정책지원의 대상을 구분할 때는 단독경영주, 공동경영주, 가족종사자, 임노동자라는 식으로 될터인데 아무래도 이건 우리 정서가 아니다. 또한 공동경영협약이나 가족경영협정이란 것을 도입하고 거기에 무수히 많은 부속서류들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아무리 핵심정예 여성인력으로 육성한다고 하여도 여기에 접근할 수 있는 여성농업인이 얼마나될지 모르겠다. ○여성농업인 기여도 잘 알아야 이러한 정책이 나오게 된 우리 시대의 사회적배경과 우리농업에서 여성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결국 그 운용방법의 덫에 걸려 또 다른 많은 규제를 만들어내고 실질적 여성농업인 육성은 표류하는 결과가 될 것 같아 불안하다. 유럽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여성농업인들의 생산자원에 대한 접근과 권한이 부여되어 있고 그들의 기여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으며 환경과 지속가능발전의 페러다임 즉, 식물유전자원의 보존과 농업생태유지에 대한 여성의 기여도를 인정하는 사회적 철학이 있다. 이것을 먼저 배워온다면 여성농업인 육성 정책들이 시골에서 여성으로 사는 것이 즐거운 나라로 만드는 매개체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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