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길잡이|

‘언젠가는 시골로 내려가서 농사나 지으면서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해야지.’ 누구나 하는 얘기입니다. 욘사마 배용준씨도 농부가 되고 싶다(2009)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은퇴 후 70% 이상이 시골에서 살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누구나 시골로 내려가진 않습니다.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지요. 귀농, 말은 돌아간다는 얘기지만 귀농학교에 오는 분들은 거의 도시에서 자라고 배운 사람들입니다. 제 손으로 씨 한번 뿌려본 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형편에 환금작물로 뭘 선택해야 돈이 되는지 물어옵니다. 낯설고 험한 길이 불을 보듯 훤합니다. 귀농하려는 사람보다 주변 분들의 걱정이 태산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어디서 홀려가지고 정신이 나갔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온통 말리는 사람들 밖에 없습니다. 귀농은 탈출입니다. 출퇴근에 매여서 콩나물시루같은 지하철을 타기도 싫고요, 다른 사람의 명령에 따라 나와 상관없는 규정에 따라 살고 싶지도 않습니다. 식구가 왜 식구입니까? 한 집에서 끼니를 같이 한다고 식구(食口)인데 가족이 한데모여 밥 한 끼 먹을 날이 없습니다.
자급본능이라는게 있다고 믿습니다. 모든 생명들이 제 집을 지을 줄 아는데 인간만 그런 능력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건축본능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난 구경이 싸움구경과 불구경입니다. 아궁이에 불을 피우고 있으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습니다. 점화본능입니다. 겨울이 되면 얼른 봄이 와서 언 땅만 녹길 기다립니다. 땅을 갈고 싶은 경작본능입니다. 명상을 한다고 가부좌를 틀고 앉으면 온갖 잡생각이 멈추질 않습니다. 호미 들고 30분만 풀을 매보세요. 머릿속이 깨끗해집니다. 귀농은 어쩌면 우리 본능을 되찾는 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몸만 시골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농심(農心)으로 돌아가는 게 귀농이라고 봅니다. 요새 귀농과 귀촌을 구분해야한다는 말이 나돕니다. 취농이라는 말도 있더군요. 행복한 삶을 찾아가는데 밥벌이니 전원농이니 구별할 일은 아닙니다.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옮겨놓는 일은 개인의 입장에서도 문명의 전환입니다. 직장을 바꾸는 게 아닙니다. 생활의 모든 면을 고려해야합니다. 그렇다고 귀농준비에 10년씩 걸리는 것은 문제입니다.

‘농심’으로 돌아가는 게 귀농
생활의 모든 면 고려해야 하지만
알수록 계산하고 재는 능력만 커져
사업한다 돈만 쓰지 않는다면
결행은 빠를수록 좋아
삶 허비하지 말고 마음·직관 따르길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만 알면 알수록 정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중심을 잡기 어렵습니다. 자꾸 계산하고 재는 능력만 커지거든요. 귀농학교가 끝나기도 전에 귀농을 결행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준비가 덜 돼서 아마 고생께나 할 겁니다. 그래도 빨리 가서 시골에서 고생하는 게 낫습니다. 사업을 벌인다고 덜컥 돈쓰는 일만 벌이지 않는다면 결행은 빠를수록 좋습니다. 막상 내려가려니 발목을 잡는 일도 생기고 솔직히 점점 두렵습니다. 걱정 마세요. 시골도 사람 사는 곳입니다.

애플의 경영자, 스티브 잡스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젠 잡스없는 세상’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세상이 떠들썩했습니다. 그 사람의 됨됨이와 상관없이 2005년,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에서 행한 연설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방망이질하고 있습니다. 여느 예언자의 가르침보다 빛나는 메시지입니다. 저한테는 빨리 시골로 내려가라고 부추기는 선동문으로만 들리는데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여러분도 언젠가는 죽을 것이니 다른 사람의 삶을 살면서 허비하지 마세요.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과 직관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는 것입니다.
지금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바보짓이라도 두려워마세요!(Stay Hungry, Stay Foolish)’

마지막 문장은 잡스가 어린 시절부터 즐겨 읽었던 ‘지구백과’라는 책의 뒷면에, 아침 해가 솟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때 시골도로를 찍은 풍경 위에 쓰인 문구를 인용한 것입니다. 박용범 전국귀농운동본부 사무처장

박용범 사무처장
은 생태농업활동가로 현재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사무처장을 역임하고 있고 소농학교에서 교감을 맞고 있다. 또한 ‘도시농업’을 저서, ‘생활농업으로서 도시농업활성화방안연구’를 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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