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중앙회의 전산장애 사고가 발생한지 두 달이 되어간다. 지난 4월 12일 발생한 농협의 전산마비 사고는 사건 직후 수사당국이 사이버 테러로 규정하면서 내부공모 등에 무게를 두고 수사망을 좁혀갔다. 하지만 지난달 4일 발표된 결과는 북한의 소행으로 일단락되었다. 파일 삭제 명령에 사용된 I.P주소가 지난해 발행한 디도스 공격 때와 같고 제작기법도 일치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고는 확실한 결론과 책임 없이 잊혀지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단순한 북한에 떠넘기기로 끝나서는 사고재발 방지는 물론 근본 해결점을 찾을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당초 단군 이래 최악의 사이버 테러의 하나로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켰지만 ‘북한소행’이란 한마디에 잠잠해졌다.

고객들은 금융거래 원장이 사라진데다 자동이체가 안 되고 ATM기 불통, 인터넷뱅킹 마비 등으로 한 달 동안 불편을 겪었다. 농협은 전산망 복구 일자를 사고발생 1일 후에서 10일 후, 다시 20일 후로 연장하는 등 ‘양치기 농협’이란 비아냥까지 받았다. 거래원장의 복구를 외쳤지만 끝내 완전 복구에는 실패했다. 급기야 신용카드 사용료 청구를 한 달 연기하고 막대한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으면서 전산망을 재가동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서 자산규모 200조원의 농협 IT예산이 지난 3년간 1534억원에서 934억원으로 감소한데다 보안예산은 고작 30억원에 그칠 만큼 허술한 전산망 관리가 드러났다. 농협은 2015년까지 5100억원을 들여 완벽한 보안시스템을 갖추겠다고 했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비용치고는 너무 많다. 경제사업활성화를 위한 자본금 확충이 시급한데 5100억원은 금싸라기 같은 액수다.

북한소행이란 명확한 증거가 없는 점도 문제다. 끝까지 원인을 파악해 북한의 소행이라면 국제적 책임을 지우는 적극성을 보이는 것이 농협의 도리이자 고객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전산장애의 원인을 그냥 묻어두어서는 추락한 고객의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

여기서 최원병 회장의 책임론이 대두됐다. 하지만 최 회장은 전산장애 책임에 대해 ‘비상근 선출직’을 이유로 손사래 쳤다. 결국 전무가 모든 책임을 지고 사퇴했지만 최 회장이 대표이사 인사권 등을 행사하는 점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연말 중앙회장 선거를 앞두고 있어 마음자리가 편하지만 않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선거과정에서 어떤 형태든 전산장애에 대한 회장의 책임론이 제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뢰회복 측면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신뢰의 중요성은 많은 사람들이 인용하는 공자의 말에 잘 나타난다. 제자 자공이 나라를 경영하는데 무엇이 중요한가 묻자 공자는 군사력과 식량과 백성의 믿음을 제시했다.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하는 것에 대해 재차 묻자는 공자는 군사력과 식량이고 백성의 믿음이 없으면 하루도 지탱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신뢰는 스스로 약속을 지키는 데서 출발한다. 최 회장이 2007년 12월 중앙회장 선거에서 천명한 단임 약속을 지키면서 농협 전산망 사고의 원인을 명확히 규명하고, 내년 3월 출범하는 신용·경제사업 분리의 성공적 정착에 주력한다면 믿음의 농협으로 거듭나는 계기이자 명예롭게 퇴임하는 첫 중앙회장이란 화관을 쓸 것이 분명하다.
문광운moonk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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