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가를 거니는데 강에 한 아이가 떠내려 온다. 강물에 뛰어들어 아이를 구해 냈는데 또 한 아이가 떠내려 온다. 또 떠내려 오고 또 떠내려 오고…. 사실은 강 상류에서 아이를 한 명씩 물에 빠뜨리는 악당이 있었다. 이 악당을 잡지 않는 한 아이를 구하는 일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악당을 잡을 때까지, 아이가 수영을 배워 스스로 헤엄쳐 나올 수 있을 때까지 누군가는 떠내려 오는 아이를 구해 내야 한다…’(『한 끼의 권리』(오하라 에쓰코 지음, 최민순 옮김, 시대의 창)

1990년대 후반, 북한에 몰아친 대기근으로 300만 명의 북한 주민들이 굶어 죽었다. 그로부터 10여년이 훌쩍 지난 2011년. 국내외 여러 소식통들을 통해 북한의 만성적 식량난이 지속되고 있으며, 국제사회가 즉각적 지원에 나서지 않을 경우 조만간 90년대 ‘대기근의 악몽’이 되풀이 될지도 모른다는 경고가 계속 나오고 있다. 60년 만에 북한을 강타한 최악의 한파로 곡물수확량이 급격히 준 데다 급등하고 있는 국제 곡물가격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도 “많은 주민들이 아사할 위험에 처해 있다”며 한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에 식량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이 같은 사정은 국제기구 조사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지난 2~3월 북한 현지 실태조사를 벌인 세계식량계획(WFP)은 북한의 식량 배급이 5월이면 중단될 상황이라며, 어린이와 임산부, 노인 등 취약계층 610만명을 위해 우선 43만톤의 식량 지원이 긴급하다고 밝혔다. 4월 말 평양을 다녀 온 카터 전 미국 대통령도 “군사적·정치적 이유로 식량 지원을 중단하는 것은 명백한 인권 침해”라며 한·미에 식량 지원 재개를 촉구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아직 본격적인 대북 식량지원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 조사 결과가 정확한지 믿을 수 없고, 지원된 식량이 북한군 군량미로 전용되거나 후계체제를 위한 선전용으로 쓰일 수 있다는 우려가 해소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에 대한 북한의 사과가 없었다는 것도 큰 이유다. 이와 관련 미국에서도 인도주의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시기상조’라는 주장이 맞서며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물론 우리 정부를 비롯해 대북 식량지원을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처럼 북한 식량난의 1차적 책임은 북한 정권에 있다. 인민들의 배고픔을 해결해주지도 못하면서 체제 유지를 위한 핵개발과 군사적 대결에 열을 올리고 있는 북한 정권의 행태는 이유야 어떻든 지탄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악당을 먼저 잡겠다고 물에 빠진 아이를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북한 정권의 ‘나쁜 버릇’을 고치겠다고, 굶주림으로 고통 받고 있는 동포들을 외면해서야 어떻게 남북의 평화와 공존을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지난해 우리나라 쌀 재고량은 150만9000톤. 1994년 이후 최대 규모다. 쌀 10만 톤당 보관비가 300억 원에 달한다고 하니 산술적으로 재고 쌀 보관비만 4500억이 넘는 셈이다.

한쪽에선 남아도는 쌀 때문에 천문학적 비용을 쓰며 골치를 썩고 있는데, 한쪽에선 수백만이 기아로 떼죽음에 당할 처지에 놓여 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부디, 이 무고한 생명이 ‘정치적’ 이유로 희생당하지 않도록 더 늦기 전에 우리 정부가 대북 식량지원에 나서 줄 것을 촉구한다.
김선아kimsa@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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