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주현주 기자] 

 

농어촌 지역의 의료공백이 심각한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주요 농정 공약 중 하나로 마을주치의제 도입, 이동형 방문진료 확대, 지역병원에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과 등 필수의료분야 의사를 유치하기 위한 지원 확대 등을 밝혔다. 하지만 실제 농어촌 의료현장에서는 이 같은 공약이 실행되려면 제도 시행을 위한 조례 제정과 예산 지원 근거 마련, 지역의사를 양성하기 위한 정책과 주민 수요에 적합한 농어촌 특화형 지원사업 등의 세심한 정책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의료시설·의료인 턱없이 부족
방문진료·마을 주치의제 등
의료공백 해소 추진 불구
의료법 상충 등 해결 안돼
시범사업 참여 저조, 실효 낮아


 # 농어촌은 보건의료 사각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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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농어촌서비스기준 이행실태를 조사한 결과, 전체 139개 농어촌 시·군 중 64%인 89개 시군에서만 30분 이내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 필수의료분야 진료를 받을 수 있었으며, 단 한 개의 과목도 받을 수 없는 시·군은 12곳에 달했다.

이동 수단도 열악하다. 농촌진흥청의 2018년 농어업인 복지실태조사에 따르면 도시에서는 의료기관까지 대부분 걸어서(42.8%)갔지만, 농어촌에서는 개인차량(52.3%)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의료 시설과 인력도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보건복지부의 2018년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농어촌의 의료기관수는 도시의 13%에 불과했고, 농촌지역에서 근무하는 의사와 간호사의 비율은 각각 전체 10.5%, 8.6%에 그쳤다.

도시와 농어촌 간의 의료서비스 접근성의 격차는 농어촌 주민의 생명과 직결됐다. 도시지역과 농촌지역 간 기대수명의 격차는 최대 7.4년으로 나타났으며, 건강수명의 경우 13.7년이 차이가 났다.


 # 의료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노력, 그러나 

이처럼 모든 지표가 농어촌 의료사각지대의 심각성을 가리키고 있다. 이에 정부와 지자체는 지역 간 의료서비스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 왔다.
우선 충남도는 의료취약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우리마을 주치의제’를 운영, 의료시설이 없는 읍·면 마을경로당에 의료진이 월 3회 이상 방문해 기초 검사를 하고, 만성질환자를 관리한다. 경북도에서는 의료진이 이동검진 차량을 통해 산부인과가 없는 의료취약지역을 월 2회 방문해 산전검사, 초음파, 부인과 진료 등을 제공하는 ‘찾아가는 산부인과’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의 의료접근성 개선을 위해 의료진이 환자의 집까지 직접 찾아가는 방문진료도 이뤄지고 있다. 복지부는 2019년부터 ‘일차의료 방문진료(왕진) 수가 시범사업’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여전히 낮은 방문진료 수가(2021년 기준 12만700원)로 의원 참여율은 미미한 상황이다. 특히 시범사업에 참여한 348개 의원마저도 대부분 서울(107)과 경기(92) 등 도시에 몰려있고, 충남(18), 충북(15), 경남(11), 경북(4개), 전남(7), 전북(17), 강원(3) 등 농어촌이 많은 지역의 참여는 저조한 상황이다.

강원도에서 방문진료 시범사업에 참여한 김종희 원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원장은 “인구가 적은 농촌지역은 교통이 불편하고, 거동이 어려운 고령인구도 많아 병의원에 갈수 없는 환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어쩔수 없이 가족이나 돌봄종사자가 장기 대리처방을 받고 있는데, 방문진료는 불안한 대리처방을 보다 안전하게 찾아가는 대면진료에 기초해 주치의 관계를 이어갈 수 있게 한다”면서도 “그러나 현 일차의료 방문진료 시범사업은 개원가만 참여할 수 있게 설계돼 있다. 찾아가는 지역의료활동에 관심있는 2차 종합병원도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마을주치의제를 시행 중인 충남도 역시 인력 부족과 낮은 실효성, 의료법과 상충되는 문제 등의 어려움이 따랐다. 우리나라 현행 의료법 상 의료인은 의료기관을 개설하지 않고는 의료업(진료)을 할 수 없고, 응급환자 진료, 환자의 요청에 따른 진료(왕진)가 아니면 의료기관 내에서만 진료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충남도 관계자는 “지역보건소에서 공중보건의 1~2명을 활용해 주치의제를 운영하는 실정인데, 공보의만으로 관할 지역 주민의 건강을 모두 책임지기에는 한계가 있다. 현재는 많은 행정력을 투입해 움직이고 있는 상황이다”면서 “공보의 인력이 부족한 것도 문제지만, 현 의료법상 공보의의 적극적인 처치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마을주치의제를 통해서는 혈압·당뇨 측정이나 붕대나 파스를 처방하는 등 소극적인 진료만 하고 있으며, 추가 진료가 필요할 경우 지역병원을 연결해 주는 정도다”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지난 3년 간 코로나19 대응에 지역 보건(지)소 인력이 집중됐고, 마을경로당도 폐쇄되는 등의 문제로 마을주치의제 활동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방문진료·마을주치의 안착 
법적 근거 마련 서둘러야
공공의대·지역할당제 도입
의료인력 확보 투자 늘려야


 # 농어촌 의료제도 개선과제 

무엇보다 농어촌 주민이 제공받길 원하는 의료수요는 갈수록 전문화되고 있다. 지금처럼 마을 순회를 통해 단순한 일회성 진료만으로는 지역주민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실제 찾아가는 산부인과를 이용한 경험이 있는 경남 산청의 딸기농가 김선희 씨(36)는 “이동식 버스에서 초음파 검사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좋았지만, 여전히 분만을 위해 타 도시로 원정출산을 가야 한다”라면서 “현재 가장 필요한 진료과목은 안과인데, 인근 시군에는 전문의가 있는 안과가 한 군대도 없어 안과진료도 원정을 가야 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병의원이 5분거리에 있어도 이동이 어려워 진료를 포기하게 되는 환자들도 많다는 것이다. 김종희 원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원장은 "이제는 환자가 병의원을 찾아가는 '의료 접근성'의 확대와 함께 의사가 환자를 찾아가는 '환자 접근성'을 지역 의료의 중요 지표로 삼아야 한다"고 전했다.

또한 농어촌 지역주민의 실질적인 ‘주치의’라고 하면, 환자의 건강상태나 질병중증도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질병이나 증상을 꾸준히 관리해 투약 및 질병 예방을 위한 상담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는 현재 시범사업인 방문진료와 마을주치의제 사업 등을 지자체 조례로 제정하고, 운영을 위한 예산지원의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방문진료는 농어촌 지역에 맞게 특화해 교통비 지원 등을 확대하고, 마을주치의제 도입을 위해서는 지역 내 의료기관 또는 시군 인접지역에 위치한 의료기관과 업무협약을 통해 해당 의료기관에 예산을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 또한 복지부가 추진하는 ‘지역사회 통합돌봄증진사업’, ‘의료 및 분만취약지 지원’ 등과 연계해 주민의 수요에 적합한 의료취약지역 지원사업도 운영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다.

김도형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연구원은 “현재 마을주치의제와 유사한 목적으로 제정된 조례는 5개인데, 해당 지자체 모두 서울, 인천, 경기 등 도시이다”라며 “지자체 조례 제정과 운영을 위한 예산 지원의 근거를 마련하고, 의료법 특례를 마련해 농어촌 의료사각지대에서는 의료행위 허용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 통합돌봄사업과 같은 중앙정부 시책과 연계해 지역의 특성, 주민의 수요에 적합하게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농촌지역 병원에서 일할 의사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공공의대 설립, 지역할당제 등의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는 제언이다. 한 의료복지전문가는 “현재 농촌 내 의료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투자는 필요하다. 그런데 현재 지역의사 양성 시스템은 대부분 장학금 등을 제공하는 대신 의무복무 기간을 부여하는 방식이다”라면서 “지역의사들이 의무복무 기간 이후에도 지역에 남아 계속 일할 수 있도록 추가적인 인센티브나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라고 전했다.

지방소멸특별법 제정안에
마을주치의제 도입 명시
균특법 개정안도 근거 마련

▲관련법안=지난해 7월 ‘지방소멸위기지역 지원 특별법’ 제정안을 대표발의한 이만희 국민의힘(경북 영천·청도) 의원은 농어촌 등 인구감소로 존립이 위태로운 지역을 위해 ‘마을주치의제도’ 도입을 명시했다. 특히 주민의 건강증진을 위해 필요한 경우 해당지역 내 의료인은 의료기관을 개설하지 않고 의료업을 할 수 있도록 하고, 가정방문을 통한 의료행위를 제공하는 마을주치의제도를 실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같은 해 9월 김수흥 더불어민주당(전북 익산갑) 의원은 인구감소지역의 의료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국가균형발전특별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개정안에서는 국가와 지자체가 인구감소지역 주민을 위해 마을주치의사업을 시행하고, 사업비용을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지자체는 지금|우리마을 주치의제 최우수 ‘홍성군보건소’
“마을주치의제 활성화, 의사들 동참에 달려”

공중보건의 활용 ‘인력난’
사업 운영 쉽지 않지만
‘의사가 마을에 온다’는 것에
지역주민 안심호응도 높아 

이종천 보건소장

홍성군보건소는 지난해 충남도에서 우리마을 주치의제 최우수기관으로 선정됐다. 코로나19로 인해 대부분 지역의 마을주치의제 활동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보건지소 4곳에서 화상 장비를 통한 원격진료를 해왔기 때문이다.

이종천 보건소장은 “현재 우리마을주치의제는 공중보건의를 활용해 이뤄지고 있으며, 그 실상은 여전히 시범사업 수준에 머물고 있어 우리가 특별히 잘 하고 있다고 말하기 부끄럽다”면서도 “코로나19 이후 의사들이 비대면 원격진료의 필요성에 많이 공감을 해 추진할 수 있었다”라고 답했다.

올해 홍성군에 배치된 공중보건의는 지난해보다 1명이 줄어든 11명이다. 인력부족의 문제로 공보의를 통한 우리마을 주치의제 운영이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지역주민의 호응도가 높아 사업을 중단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종천 보건소장은 “의료접근성이 취약한 마을주민에게는 의사가 마을로 찾아온다는 것 자체만으로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마을주치의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의사들의 적극적인 동참이 필수적이라고 전했다. 이종천 보건소장은 “아직까진 의료법상 방문진료나 원격진료로 허용되는 의료업(진료)이 제한돼 있고, 이에 대한 책임소재도 불분명하다”며 “의료법 개정과 더불어 원격의료가 정착되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장기적으로 지역의료인을 양성하기 위한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천 보건소장은 “일본, 유럽 등 해외사례를 살펴보면 의료 기관을 국가에서 공공영역으로 포함시켜 운영하고 있다”면서 “국내에서도 공공의대설립 등 지역의사를 양성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끝> 

주현주 기자 jooh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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