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문제의 시작과 끝 ‘농지제도’ 개선


[한국농어민신문 김선아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국제 곡물시장 불안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농지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매년 여의도 면적 52배에 달하는 농지가 전용될 정도로 식량 생산기반이 위협받고 있다. 적정한 식량 생산에 필요한 농업진흥지역 우량농지만큼은 확실히 지키겠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 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농지 보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한 말이다. 구체적인 공약으로는 △적정 수준의 농지 확보를 위한 제도적 방안 강구 △농지 투기 방지를 위한 농지관리기관과 농지정보관리시스템 일원화 △식량자급률 상향과 관련 예산 편성 의무화 △기초식량 비축량 확대와 식량비축시설 현대화 추진 등을 제시했다.(윤석열 공약위키 참조)

국민의힘 예비후보 시절이었던 지난해 8월 청년싱크탱크 ‘상상23’ 오픈 세미나에 참석해 “농지법 등 관련 법이 경자유전에만 너무 집착하고 있다, 관련 법규정이 농업이 비즈니스로 발전하는 것을 다 가로막고 있다”며 법 개정 필요성을 언급, 농업계의 큰 반발을 샀던 것을 감안하면 이유야 어떻든 상당한 변화가 느껴지는 발언이다.

식량자급률 45.8%, 곡물자급률 21%(2019년 기준)에 불과한 나라에서 더 이상의 농지 훼손을 막지 않으면 식량안보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경고음이 나온 지 오래다. 새 정부가 챙겨야 할 농지제도 개선 과제를 살펴본다.
 

‘LH 사태’와 미완의 농지법 개정

2020년 공익직불제 시행 앞두고
농특위 ‘농지 개혁’ 필요성 제안
특정 지역 전수조사 추진하며
제도 개선방안 마련에 힘 쏟아

LH 사태 터지면서 논의 급물살
1994년 농지법 제정 이후
처음으로 ‘소유규제’ 강화했지만
비농업인 투기 막기엔 역부족

문재인 정부에서 농지제도 개혁 논의에 불을 붙인건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였다. 공익직불제 시행 첫 해였던 2020년 당시 박진도 농특위원장은 신년사에서 “농정의 기본인 농지 제도가 문란해서는 어떠한 농정도 제대로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면서 ”농지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 불법적 농지 소유를 막고 임차농민의 농지 이용권을 보장, 농지의 효율적 보전과 이용을 위한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2기 농특위(위원장 정현찬)에서도 농지제도개선 소분과(분과장 조병옥)를 중심으로 특정지역 농지전수실태 조사를 추진하며 꾸준히 ’농지 소유 및 이용제도 개선방안‘ 논의를 이어갔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과연 농지제도를 손댈 수 있을까’에 대해선 회의적인 분위기가 팽배했던 게 사실이다.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 때마다 ‘농지법 위반’이 단골 메뉴로 등장하고, 국회의원들의 농지 투기 논란이 해마다 불거져도 주무부처인 농식품부는 물론 이해당사자인 국회가 꼼짝도 하지 않았기 때문.

농지제도 개선 논의가 급물살을 탄 건 지난해 3월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태’가 터지면서부터였다. LH 사태는 가뜩이나 ‘부동산값 폭등’으로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었고, 매입 토지의 98.6%가 ‘농지’로 확인되면서, ‘농지’가 어떻게 투기세력의 먹잇감이 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이들은 가짜 농업경영계획서를 제출해 손쉽게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발급받았고, ‘지분 쪼개기’ 방식으로 농지를 매입, 희귀 묘목을 심어 대토 보상을 노리기도 했다.

농지가 이렇게 투기세력의 온상이 된 건 1994년 농지법 제정 이후 수십년간 농지규제 완화에만 몰두, 농지법이 ‘누더기’가 된 탓이다. △6개월 사전거주요건 폐지(1994년)를 시작으로 △통작거리 제한 폐지(1996) △농업법인 및 주말·체험영농 목적 농지소유 허가(2003) △축사 등 농지이용행위 확대(2007) △시·구·읍·면 농지관리위원회 폐지(2009) 등이 대표적이다.

여론이 들끓자 농식품부와 정부 여당은 부랴부랴 농지법 개정에 나섰고, 개정안은 7월 2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에는 △농지취득자격 심사 및 사후관리 강화 △농업진흥지역 주말·체험영농 목적 농지 취득 금지 △투기목적 확인시 즉시 처분 명령 부과 및 이행강제금 부과기준 상향 △상속·이농 농지 미이용 처분 의무 △농지관리위원회 및 농지위원회 설치 등의 내용이 담겼다. 1994년 농지법 제정 이후 농지 취득과 소유에 대한 규제가 강화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곧장 “비농민의 농지 투기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주말·체험용 농지 거래의 80%가 이뤄지는 진흥지역 밖에서는 여전히 거래가 가능한 데다, 비농민 농지 소유의 핵심경로인 상속 및 이농농지에 대한 근본적 대안이 담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장의 요구가 높았던 전국 단위 농지실태전수조사도 예산 등을 이유로 반영되지 않았다.

조병옥 농지제도개선 소분과위원장은 “농지 문제는 오랫동안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였다. 그동안 정부와 정치권이 응답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다행히 LH 사태로 농지문제가 전 사회적 관심사로 부각되면서 규제 완화 일변도였던 농지제도를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는데, 반쪽 개혁에 그쳐 아쉬움이 많았다”면서 “정권은 바뀌었지만 현장의 광범위한 의견을 수렴해 만든 농특위의 농지제도개선 방안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농지제도 개선이 필요한 이유

50년간 농지 30% 이상 사라져
농업진흥지역 계속 줄어 비상등
식량자급률은 45.8%로 뚝

농업소득 낮은데 농지가격 상승
가격 높아 농업인은 매입 못하고
비농업인만 ‘지가차익’ 악순환 


사라지는 농지, 식량자급률 하락=1970년 229만ha였던 농지는 2020년 156만ha로 줄었다. 50년간 30% 이상의 농지가 사라진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우량농지인 농업진흥지역이 계속 줄고 있다는 점이다. 2006년 91.7만ha였던 진흥지역은 2019년 77.6만ha로 15.4%가 감소했다. 전체 농지에서 진흥지역이 차지하는 비중도 50.9%에서 49.1%로 줄었다. 같은 기간 86.2%였던 식량자급률은 45.8%로 40.4%p 하락했다. 쌀을 제외하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2020년 기준 밀 자급률은 0.8%, 옥수수 3.6%, 콩 30.4%(사료용 제외)에 불과하다.

김수석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이에 대한 대안으로 ‘농지총량제’ 도입을 제시하고 있다. 지난해 열린 한 토론회에서 김 위원은 “우리나라 농지가 최근 10년 사이 8% 이상 없어졌다. 이런 식으로 줄기 시작하면 식량안보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면서 “식량자급률 목표를 설정해 농지면적을 산정한 후 사회적 합의를 통해 보존할 농지의 총량을 정해 농지의 무분별한 전용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지 절반 이상이 '임차농지'=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농업인의 농지소유 면적비율은 1995년 67%에서 2015년 56.2%로 급감했다. 이에 따라 1960년 13.5% 수준이던 임대차 농지 비율은 2017년 51.4% 수준으로 절반을 넘어섰다. 비농업인의 농지 소유증가는 농지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 1987년 이후 주거용 토지는 3.2배 상승한 반면 지목상 전은 4.8배, 답은 4.3배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농업소득이 낮은데도 농지가격이 이렇게 계속 상승하는 것은 생산가치보다 투자가치로서 효용이 더 크다는 얘기다.

박석두 GS&J 인스티튜트 연구위원은 “농지문제의 핵심은 보전해야 할 농지 면적이 부족한데도 전용이 계속 이뤄지면서 농지가격이 상승, 농업인들은 비싼 가격 때문에 농지 매입이 어렵고, 비농업인은 농지를 소유함으로써 지가차익을 누리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라면서 “농지 전용을 엄격히 규제해 지가차익을 기대하는 비농업인의 투기적 농지 수요를 차단하고,  농업인이 농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정책의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비농업인 상속 농지 급증 불보듯=2018년 기준 70세 이상이 45.1%의 농지를 소유하고 있다. 60세 이상으로 보면 전체 농지의 81.3%를 차지한다. 이들 고령농업인의 농지가 20년 내에 매매되거나 상속·증여된다고 하면, 결국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전체 농지의 80% 이상을 비농업인이 소유하게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해 농지법 개정을 통해 농업에 이용하지 않는 상속·이농농지는 사유발생일로부터 1년 안에 처분토록 했지만,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농지 상속은 ‘민법’에 따라 피상속인 사망으로 자동 개시되고, 소유권 이전등기·농지대장·농지취득자격증명 등과 관계없이 소유권이 이전돼 현황 파악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상속신고제 도입, 농지취득자격증명 발급 의무화, 대법원 등기자료 연계 등 다각적 상속농지 관리방안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터뷰 김영희 선문대 연구교수
“비농업인 ‘상속농지’부터 해결해야”

상속농지 조기파악 체계 구축
농지관리기구 선매협의제 도입
세제혜택 부여해 처분 유도를

지난해 농특위에서 ‘농지제도개선 방안 연구’에 참여한 김영희 선문대 연구교수는 농지제도와 관련 새 정부가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현안으로 ‘상속 농지’ 문제를 짚었다.

앞으로 20년간 비농업인의 농지 소유가 늘어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상속인데, 현행법상 사적재산인 비농업인의 상속농지를 규제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민법의 포괄상속 및 균분상속 원칙에 의해 농지의 비농민 소유와 세분화가 증가하게 되므로 이를 억제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면서 “일단 상속농지 현황을 조기에 파악할 수 있는 정보체계를 구축하고, 농지관리기구의 농지선매협의제도 도입과 장기보유 특별공제 등의 세제 혜택을 부여, 처분을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이어 “코로나 펜데믹과 기상이변 둥으로 세계곡물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최근 FAO 등 국제기구가 각국에 농지 확보를 권고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농지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다”면서 “농지는 개인에게는 지켜야 할 사유재산이지만 국가 입장에서는 한 번에 생성되지 않는 소중한 농업자원이므로 양자의 가치를 보호하기 위한 균형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농지제도는 공익직불제 같은 농가소득지원정책은 물론 신규·청년농 진입 촉진정책, 영농규모화 등 구조조정 정책과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 만큼 더 늦기 전에 새 정부가 출범과 함께 농지제도 전반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 줄 것”을 당부했다.

김선아 기자 kimsa@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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