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숙

[한국농어민신문]

돼지 열병으로 양돈 농가들의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밥 주고 똥 치워가며 애지중지 기르던 것들을 생매장을 시킬 때 그 심정을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소를 키울 때 구제역이 발생했었다. 우리 집이 발병의 근원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고 또 전염원을 차단하기 위한 경계 안에 들지 않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랐던가. 외부로부터의 모든 출입을 차단하고 매일 소독을 하면서 하루하루 피를 말리는 심정으로 지냈던 것을 생각하면 몸서리가 처진다.

그렇게 평생을 소를 키우며 살았던 나는 이런 저런 사유로 축산업을 정리할 즈음에 조합에서 운영하는 공동사육장에 소를 입식하여 키우게 되었다. 수도권 지역은 도시화가 되면서 축산업이 설 자리가 좁아지자 조합은 공동 사육장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조합원 역시 평생에 해온 것이 축산업이니 그렇게 해서라도 조합의 일원으로 남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런데 지난 3월 조합장 동시 선거를 앞두고 공동 사육장에서 사육하는 조합원을 모두 강제 탈퇴 시켰다. 한마디 예고도 없이 농림축산식품부의 권고안이라는 공문 몇 장과 함께 탈퇴 통지서를 받았다. 이유는 공동사육장에서 사육하는 조합원은 조합원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송아지 구입비, 사료 값, 약 값, 볏짚 값, 관리비가 모두 개인통장에서 나가고 소를 판매하면 대금이 각자의 통장으로 들어오는데 더구나 소 이력제 귀표가 있어 자신의 소가 어느 것인지 알 수 있고 손익계산서가 각 개인의 몫인데 농민의 대표기관이라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이런 권고안을 내릴 수 있을까.

그들의 주장내용은 ‘개별 조합원이 축산업 경영인으로서 자기의 계산과 책임 하에 사양관리하고 그 손익이 본인에게 귀속된다고 볼 수 없음’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잣대를 들이대어 하루아침에 무자격자로 몰아 강제 탈퇴를 단행했다. 선거를 앞두고 벌어진 이 일에 분노와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조합원 자격 요건에 소는 두 마리만 사육해도 된다. 공동사육장에서 키운다는 이유만으로 조합원 자격을 박탈하는 파렴치한 행위는 용납할 수가 없다. 우리도 목장초기에는 부부의 노동력으로 지탱했지만 규모가 커지면서 일하는 사람을 고용해서 경영했다. 월급주면서 모든 손익은 내가 감당하는 것이다. 그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내 개인의 사육장이 아닌 공동사육장에서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육한다는 것뿐이다.

조합과 조합원으로서 서로 상생하며 오늘에 이르렀는데 언제는 조합원이 주인이라고 떠받들더니 하루아침에 냉정하게 차 버렸다. 조합원을 버리라고 권고한 게 농림축산식품부라는 것에 경악했고 몇 년 동안 아무 탈 없이 공동사육장을 운영해 왔는데 왜 이번 선거에 무자격자로 몰아 탈퇴를 시켰는지 모르겠다. 분노한 조합원들이 힘을 모아 소송을 하고 있다.

느닷없이 날아온 공문 몇 장으로 강제로 탈퇴 당한 어처구니없는 이 사건, 힘 있는 분들의 한마디 말이면 단번에 뒤집힐 이 사건이 소나 키우며 살아온 힘없는 농민에게는 너무나 먼 길이다. 법 근처에는 안 가본 평생 소만 키워온 사람들, 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진행하는 이 소송의 결과가 잘 나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돈과 권력 앞에 정의가 무너져 내리는 시대지만, 힘없는 사람들이 진행하는 이 소송의 결과가 잘 나온다면 아직은 이 땅에 정의가 살아있음을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축산업은 점점 설 곳이 없다. 환경문제, 동물복지, 전염병 등…. 국민의 식생활에 꼭 필요한 축산업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야 할 텐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공동사육장 운영까지 막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농민은 태풍에 울고 축산 농가는 전염병에 멍드는데 그릇된 판단으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우리는 배신감에 운다.

/박세숙
평택에서 태어나 30여년 낙농업 후 한우 사육, 음성예총 수필창작교실 수강,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 회원

관련기사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