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안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 전 편집장, 회장 역임, 문예운동 신인상, 한국포도회 이사, 향기로운포도원 운영

[한국농어민신문]

마침내 일을 마무리 지었다. 3000평 과수원 나무마다 열린 복숭아에 봉지를 씌워주는 일이다. 세월이 좋아 기계가 할 수 있는 일도 많지만, 이 일만큼은 한 알 한 알 사람 손으로 직접 씌워야 한다. 유월에 들면서 부쩍 뜨거워진 날씨에 콩죽 같은 땀을 흘려가며 온 가족이 힘을 모은 결과라 더 의미가 크다.

봉지 씌우는 철을 앞둔 지난달에는 난데없는 일손 구하기 전쟁이 일어났다. 작년까지만 해도 열매솎기가 끝난 과수원부터 차례차례 하면 되었는데 올해는 달랐다. 7단 사다리도 거뜬히 타는 튼튼한 다리, 마치 기계가 움직이는 것처럼 사라락 봉지를 싸던 빠른 손놀림, 본인이 먹을 도시락까지 사 들고 오던 젊은 외국인 여성들이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 초기 때 본국으로 많이 가버린 탓이다. 일찌감치 사태를 파악한 농가들은 발 빠르게 움직여 일손을 구했지만, 늘 한발 늦는 나는 뒤늦게 이 사실을 깨닫고 동분서주했지만 핸드폰만 잔뜩 열을 받았을 뿐 헛수고였다.

때를 놓치면 안 되는 산더미 같은 일 앞에서 그들의 부재를 확인하고 망연자실했다. 그동안 내 과수원에 와서 일해 준 외국인 노동자들의 수고에 대한 고마움이 물밀 듯 밀려왔다. 우리 사회는 불법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우려도 하지만, 그 일손에 의존하며 농사짓는 농촌은 그 사람들이 더없이 소중한 존재임을 부정할 수 없다. 지금 세상에 과수원 일처럼 험한 일을 할 젊은 한국 사람은 거의 없다. 그전부터 일하시던 분들은 칠팔십 대 노인이라 더는 위험하고 힘든 일을 할 수 없다.

급하면 혈육을 찾게 마련이다. 부산에 사는 막내 동생이 올라왔다. 함께 농사짓는 딸과 달랑 둘이 일하다 손이 재빠른 동생이 올라오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작업 이틀째 날이었다. 맞은편에서 일하던 동생이 “어이쿠!” 하면서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무릎 높이의 받침대에 올라서다 넘어져 팔뼈가 부러진 것이다. 부축을 받으며 밭을 나오던 동생은 의식이 나간 듯 잠시 멍해져서 묻는 말에 대답을 잘 못 했다. 몇 발자국 더 걷다가 다리가 풀리면서 주저앉고 말더니 눈앞이 안 보인다고까지 했다. 잠시 잠깐이지만 얼마나 놀랐던지.

일이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언니라는 사람이 작년에 갑상선 수술을 받아 몸도 약한 애를 이 더위에 일해 달라고 불러들이다니. 가슴을 쥐어뜯고 싶었다. 딸이 운전해 청주 병원으로 갈 차에 타는데 동생이 말렸다. 일도 많은데 일해야지 뭐 하러 우르르 물려 가느냐는 것이다. 옳은 판단이었다. 차에 올렸던 발을 내려놓는데 어찌나 속이 상한지 뜨거운 감정 덩어리가 올라와 목구멍을 턱하고 막았다. 부러진 팔에 부목을 대고 병원으로 향한 동생, 그렇게 동생을 보내고 터벅터벅 밭으로 돌아가 봉지를 씌우는데 일도 안 되고 찔끔찔끔 눈물만 나왔다.

늘 얼치기 농사꾼 동생이 걱정인 큰언니가 할 수 없이 나섰다. 내게 올 때면 바리바리 밑반찬을 만들어 오는 팔순이 가까워져 오는 늙은 언니…. 해마다 와서 도와주었지만 이제는 그만 불러야지 했는데 올해 또 나서야 할 형편이 되고 말았다. 뒤에서 바라보니 큰언니의 걸음걸이가 몹시 조심스러웠다. 작년보다 다리 힘이 떨어졌다는 뜻이다. 그래도 나에게만 오면 일 하나라도 더 해주고 가려고 동동거린다. 자신이 장사인 줄 아는 바보 언니를 보며 다짐했다. 이제 더는 일 해 달라고 하지 말고 노는 계절에 불러 맛난 거나 먹으러 다녀야지 하고.

주말이 다가오자 직장인 두 사위도 나섰다. 큰 사위는 금요일부터 주말까지 사흘을 꼬박 봉지 씌우기에 매달렸다. 코로나 때문에 휴일에도 교회 등으로 나가 마스크 쓰기와 거리 두기 실천사항을 점검해야 하는 공무원 작은 사위도 어찌어찌 시간을 냈다. 네 살, 여덟 살 두 손녀도 현재 상황에 대한 말귀를 알아듣고 잘 놀아 주었다. 주말 동안 온 식구가 꼭두새벽부터 어둑해질 시간까지 바짝 매달린 덕분에 드디어 그 많은 복숭아에 봉지를 다 씌운 것이다.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외부인력 도움 없이 그 많은 일을 다 해내다니. 동생의 사고, 언니와 두 딸과 사위들의 땀, 가족이 아니라면 어찌 이일이 가능했겠는가. 코로나바이러스가 준 어려움을 통해 가족의 힘이 얼마나 큰지 깨닫는다. 3000평 복숭아 봉지 씌우기 정도는 이제 겁도 안 난다. 우리는 황소도 때려잡고 남을 힘의 가족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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