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역대최대 농축산물 가격할인 ‘역효과 우려’

[한국농어민신문 우정수·고성진 기자] 

평택시의 한 할인마트에서 판매 중인 사과. 사진에 보이지 않는 한 봉 3900원짜리 사과까지 소비자 선호도에 맞춰 다양한 가격대의 사과를 판매하고 있었다.
평택시의 한 할인마트에서 판매 중인 사과. 사진에 보이지 않는 한 봉 3900원짜리 사과까지 소비자 선호도에 맞춰 다양한 가격대의 사과를 판매하고 있었다.

정부가 역대 최대 수준의 가격 할인을 지원하는 등 가격 안정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행 중에 있지만 국내 실제 사과 소비량에 대한 분석 없이 추진하는 정책에 산지와 소비지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금사과’ 논란이 연일 이어지고 있는 17일, 서울 양천구 A대형마트와 경기 평택의 B할인마트에는 다양한 가격대의 사과가 놓여 있었다. 할인행사가 진행 중인 대형마트에서는 1봉(1.5㎏, 4~6입)당 1만원 초반대(1만2000~1만3000원)에서 판매되고 있었다. 축산물 코너엔 축종별 등급이나 가격대를 비교 분석하며 구매하는 이들을 쉽게 찾을 수 있는 반면 과일의 경우 할인 가격표를 주시하며 매대를 둘러보는 모습이 많아 미묘한 풍경 차이를 보였다. 정부 할인지원 정책이 적용되지 않은 평택의 B마트에는 오히려 대형마트보다 저렴한 8000원~1만원(4개 기준) 등이 판매되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이보다 더 낮은 가격대도 있었다. 사과 도매가격이 10㎏당 9만원을 돌파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이었지만, 품질 또는 수량, 선호도 등에 맞춰 소비지 가격은 비교적 고르게 분포돼 있었다. 
 

가격위주 경쟁적 보도50년 사과농가 “이런 호들갑 처음” 

지난해 이상기후(냉해)와 잦은 비에 따른 병해(탄저병)로 생산량이 급감한 사과가격이 ‘뜨거운 감자’로 부각되고 있다. 고물가를 체감케 하는 대표 품목으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다.

여기에는 가격 위주의 경쟁적인 언론 보도가 한 몫을 하고 있다. 사과 도매가격이 올해 들어 처음으로 10㎏(가락시장, 상품 기준)당 9만원(9만740원)까지 올랐다는 보도를 비롯해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달 사과 물가 상승률이 71%를 기록해 역대 세 번째라는 소식도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지난해 냉해와 잦은 비에 따른 병해(탄저병)로 인해 생산량이 30% 이상 급감해 공급량 부족을 겪는 사과는 일부 언론이 주도해 ‘수입 허용' 여론을 확산하려는 ‘수입’ 논란까지 겪는 등 총선을 앞두고 물가 상승의 주범으로 몰리며 ‘정치 이슈’로 변질되고 있다.  

대구경북능금농협 조합장인 서병진 한국사과연합회 회장은 “이런 난리가 없다. 사과 농사를 50년 동안 지어오는 동안 사과 생산량이 급감했던 적이 몇 번 있었지만, 올해처럼 사과 가격이 올랐다고 호들갑을 떤 적은 처음 있는 일”이라면서 “농산물 가격은 생산이 조금만 과잉되면 폭락한다. 사과는 그동안 공급이 안정적인 품목 중 하나로, 가격 폭락을 걱정해왔던 것이 예삿일이었다. 인건비·농자재비 증가로 생산비도 크게 오른 상황인데, 일시적인 생산 감소 상황에서 언론은 소비자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수입까지 들먹이고 있어 생산 농가 입장에선 기가 찰 노릇”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나온 도매가격 관련 보도 사례처럼 대부분의 언론에서 높은 가격 중심으로만 언급하고 있는데, 실제 도매시장의 전반적인 경매가격과 차이가 있다는 부분도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가 15일 발표한 ‘2024년 2월 가락시장 과일류 고중저 가격월보’에 따르면 설 수요가 몰리며 평소보다 가격 상승 요인이 많은 2월 사과(부사 10㎏) 경매 평균가는 고가 7만1539원, 중가 4만8144원, 저가 3만1267원이다.

참고로 생산량에 따라 변동하는 연간 1인당 사과 소비량은 평년 기준으로 10㎏ 안팎(2023년은 7.6㎏)이다. 국민 1명이 1년에 사과 10㎏ 정도를 소비한다는 얘기다. 
  

1000억 넘게 투입하지만 대형마트 등 일부만 수혜

이런 가운데 대대적인 재정을 쏟아붓고 있는 정부 할인지원 정책도 논란이 되고 있다. 정부는 15일 납품단가 지원(755억원), 할인지원(450억원) 등 1500억원을 추가 투입하겠다고 밝히는 등 사과(농축산물) 가격 안정 명목으로 ‘역대 최대’라고 일컫는 예산을 꺼내 들었는데, 이를 두고 따가운 시선이 나타나고 있다. 

먼저 실제 체감 물가와 지표 통계 간 간극이 벌어지는 문제로 인해 정책 효과가 지표 지수(공식 물가지수)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정부 정책이 체감 지수에 바로 반영되기 어려운 구조적인 부분 때문으로, 일시적 할인 행사 등이 물가지수 산정에 반영되지 않고 있어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통계청 소비자물가지수에서 사과 등 농산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공산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지 않기 때문에 물가 안정 효과가 기대에 역부족인 상황이다. 가격 편차가 크기 때문에 물가 상승을 주도하는 것처럼 인식되기 쉽지만, 통계청 소비자물가지수에서 사과가 차지하는 가중치는 2.3에 불과하다. 즉 전체 물가지수 가중치(1000) 중 비중이 0.23%로, 물가지수에 미치는 영향력은 1%도 되지 않는다. 

할인지원 정책에 대한 실효성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가격을 낮추는 효과가 일부 있지만, 특정 소비처(대형마트 중심)와 특정 품목(사과 등 일부 농산물) 위주의 할인지원이 역효과를 동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농산물 위주의 지원 방향이 농산물을 물가 주범으로 보는 인식을 더욱 고착화시킨다는 점, 실수요가 아닌 가짜 수요를 자극해 실제 가격 불안을 부추긴다는 점 등이 꼽히고 있다. 

산지 관계자는 “연중 사과 소비는 설과 추석 등 명절 수요가 가장 많은 생산량의 30~40%를 차지하고, 나머지 60~70%를 명절을 제외한 10개월 동안 소비하는 흐름을 보여왔다. 지금 시기에는 사과보다는 딸기, 참외 등 제철 농산물 구매 수요가 많은 것이 자연스러운 상황인데, 사과 등 일부 품목에 대한 할인이 집중되면서 평소 사과 구매를 하지 않는 이들의 소비 심리까지 자극해 공급량은 정해져 있는데 수요가 갑자기 많아져 가격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고, 이 때문에 정부 재정이 계속 투입되는 등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봤다. 

서울 가락시장의 과일 경매사는 “사과 하나로 전체 농산물을 흔들고 있는 셈이다. 농산물은 공급 리스크를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가격이 비싸거나 품질이 떨어지면 다른 농산물 소비로 대체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부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총선을 앞두고 사과가 대표적인 물가 품목으로 부각되면서 대형유통업체의 마진(유통비용)을 보전해주는 할인지원 정책이라는 엉뚱한 처방이 내려지고 있다. 1000억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하는데도, 소비 활성화 차원에서 전국민 지원금을 주는 등 혜택을 넓게 가져가는 방향이 아니라 대형마트 등 일부에게 돌아가는 수혜가 두드러지는 꼴이다. 적어도 할인지원 혜택 품목을 더 확대해 대체 수요라도 넓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줄어든 공급량, 소비량 못따를 수준인지 따져봐야

통계 부족 문제도 정부 정책에 대한 실효성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연간 대략적인 사과 소비량에 대한 통계 자료 하나 없이 수급안정 대책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사과 생산량이 줄어 공급량이 감소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 물량이 국민들이 소비하기에 부족한 물량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만약 소비량 대비 공급에 여유가 있는 상태라면 정책의 중심을 유통구조 개선에 맞추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다.

대략적인 재고량 파악이 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사과는 햇사과가 나오기 전에 재고량을 모두 소진하고 ‘제로’에서 다시 시작한다. 하지만 이는 저장고를 모두 비우기 위한 것으로 햇사과가 나오기 전에 남아 있는 저장 물량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생산자단체 지원을 통해 가공용 등으로 수매가 이뤄지고 있다.

사과 생산자단체 관계자는 “지난해 생산량이 급감해 올해가 예외적인 상황으로, 보통 사과가 남아 수매사업이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생과용, 가공용 등으로 소비가 전부 이뤄져 창고를 비우는 것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산지 얘기 등을 종합해보면 평시에는 가공용으로 소진하고도 사과 재고가 남아 수매사업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에선 올해 3월 이후 산지의 사과 재고량이 전년 대비 27% 적은 10만9000톤 수준으로 보고 있는데, 상대적인 물량 차이일 뿐 현재 남아있는 저장량이 국민들이 소비하기에 충분한 물량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사과 소비가 주로 이뤄지는 설 명절이 지난 시점으로, 7월 햇사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특정 성수기가 없다.  

정부에서 활용하는 연간 1인당 사과 소비량도 정확하지 않은 수치다. 연간 생산량에서 수출 물량을 제외한 후 인구수(통계청 추계인구수)로 나눈 것으로, 생산량에 따라 1인 소비량이 늘어나기도, 줄어들기도 하는 구조다. 실제로는 1인 소비량이 아니라 ‘1인 소비 가능량’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또 여기에는 생과 뿐만 아니라 주스 등 가공용 소비까지 모두 포함돼 있다.

이에 대해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평년 사과 생산량 이상이 되면 가격이 크게 변동을 일으키지 않는 만큼 그것을 적정 수준으로 보고, 가격이 올라가면 공급이 부족한 것으로 공급 측면에서 판단하고 있다”면서 “평균 소비량에 대해서는 연구가 필요한 부분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정수·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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