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연 단국대 교수

[한국농어민신문] 

가족농, 일반농가 지칭하는 또다른 용어
우리나라 거의 모든 농가가 가족농
농가별 특성에 따른 역할 설정해야

필자가 대학시절에, 강의에서 가르치지 않는 가족농 이론을 공부하려고 이런저런 책들을 보면서, 가족농을 유지하는 것이 초국적인 거대 자본의 농업 침투로 농촌지역 공동체가 파괴되는 것을 막는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많은 소규모 농가들이 가족을 중심으로 농업생산을 하는 농가이기 때문에 이들의 생존을 보장해야 국가의 기반이 튼튼해진다는 생각이었다. 또한, 당시 EU에서도 ‘유럽은 미국과 달리 가족농을 중심으로 하는 농업구조를 갖고 있다’라는 주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업농보다는 가족농을 보호하는 것이 바람직한 농정 방향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외국 연구자들과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가족농’과 ‘기업농’ 이외에 ‘가족기업농’이라는 개념이 논의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가족농 이론이 새롭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 적이 있다. 

가족농을 ‘자급하는 소규모 농가’, 기업농은 ‘상업적 농업을 수행하는 대규모 농가’로 정의했던 것은 20세기 초 논쟁이다. 2차 대전 이후 농업이 발전하면서 상황이 변하게 되었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소수의 가족이 할 수 있는 농업의 규모가 점점 커졌기 때문에 가족 구성원만으로도 상당히 큰 규모의 농장을 경영하는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 논의에서는 가족농을 기업농과 분리하지 않는다. 대신, ‘비가족농’ 개념을 대립적 개념으로 사용한다. 그리고 실제 이 시기에 일반 산업분야에서도 ‘가족기업’에 대한 연구가 확산되었고,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가족기업’과 ‘비가족기업’을 상대개념으로 사용한다. 이렇게 하면, 선진국에서도 농가의 97% 이상이 가족농이다. 따라서 97%의 농가를 대상으로 특정 영농형태를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한 구분이다. 즉, 가족농은 일반 농가를 지칭하는 또 다른 용어일 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가족농 개념이 실체를 갖는 개념이 아니라 감성에 호소하기 위한 용어에 불과하다. 실제 우리나라 학계에서 우리 농업 특성에 맞는 가족농의 개념과 범위를 제시한 적이 없다.그렇기 때문에 정부 기관뿐만 아니라 각종 농업 관련 매체에서 사용하는 ‘중소규모 가족농’이라는 용어는 그냥 중소 농가를 지칭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다. 2020년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1.5ha 미만 농가가 전체 농가의 82%, 60세 이상 농가가 73%이다. 따라서 대규모라고 하더라도 가족농 개념에서 벗어나 있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즉, 우리나라도 거의 모든 농가가 가족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중소농을 가족농이라고 표현하려고 하는 것은 농업에서 다른 산업과 달리 지켜야 하는 가치가 있다는 것을 나타내려고 하는 의도로 생각된다. 단지, 생산만이 아니라 농촌의 문화와 역사적인 측면에서도 농가를 보존해야 하고 이에 대한 정부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으로 주장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주장이 단지 목가적인 농촌 배경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농사를 하고 있는 중소농가를 지칭하는 것이라면, 타당한 주장이다. 정부의 관심과 정책이 필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을 우리나라 농업발전의 주역으로 설정하고 향후 산업적 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는 주장은 문제가 있다. 중소농은 농업생산뿐만 아니라 농촌경제에서도 다양한 활동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농정의 보호 대상일 수는 있다. 많은 선진국에서도 이들을 지원하는 농정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중소규모 농가를 농업발전의 미래로 상정하는 국가는 없다. 중소농에게 불가능하고 과분한 짐을 지우는 것은 중소농의 유지에도 도움이 되지 않고, 국가발전에도 이롭지 못한 방책이다. 잘못된 맞춤형 정책이 아닐까 생각된다. 

우리나라 농업에서 가족농은 농촌의 다양한 경제활동을 증진시키고 사회적인 통합을 증진시키는 매우 중요한 주체이다. 그러나 이것은 가족농의 형태를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이들이 우리나라 농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소농만을 가족농으로 분류해서 이들을 농업과 농촌의 모든 활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주체로 상정하고 정책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은 우리나라 농업과 농촌의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농촌지역에서 다양한 경제활동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기여하는 중소규모 농가의 역할과 농업생산의 산업적 성장을 위해서 활동하는 대규모 농가의 역할은 서로 구분되어야 한다. 농가의 특성에 맞는 역할을 부여하면서 농업구조조정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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