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FTA와 탄소중립시대 : 농업대응 전략은
<제1부> 새로운 무역질서가 다가온다
① RCEP과 CPTPP, FTA 지형이 바뀐다

[한국농어민신문 김선아 기자]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하고 2001년부터 시작된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이 지난 20여년간 아무런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사이, 각국 정부는 경쟁적으로 양자간 또는 복수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나섰다. 우리나라는 정부 스스로 ‘FTA 모범국’이라 자평할만큼 그 맨 앞줄에 서있다. 2004년 칠레와의 FTA를 시작으로 미국, 유럽연합(EU), 중국, 아세안 등 주요 교역국과 동시다발적으로 FTA를 추진, 3월 현재 57개국과 17건의 FTA를 체결해 발효 중이고, 지난해 11월 역내포괄적동반자협정(RCEP)에 서명하면서 본격적인 메가(Mega) FTA 시대를 열었다.

 

위기의 WTO 다자통상체제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발간한 ‘국제통상환경의 변화와 전망, 그리고 한국농업(시선집중 GSnJ 제291호)’보고서에서 “오는 11월 3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4년만에 개최되는 제12차 WTO 각료회의(MC 12)’는 특별한 성과 없이 형식적인 각료 선언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면서 “WTO 다자통상체제는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채 현재와 같은 표류 상태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3월 취임한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신임 WTO 사무총장이 각료회의 성과 도출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가장 진전이 빨랐던 수산보조금조차 개도국 우대와 감축 보조금의 범위를 놓고 선진국과 개도국간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아 의미 있는 성과 도출이 어려워 보인다는 것이다.

WTO의 핵심기능은 △다자협상을 통한 무역규범 제정 △회원국의 WTO규범 준수 및 무역정책 감시·감독 △회원국간 무역분쟁 해결 등 3가지로 요약된다. 그러나 2001년 시작된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은 20년째 진전 없이 교착상태에 빠졌고, 회원국의 무역정책에 대한 감시·검토 기능도 작동은 하고 있으나 법적 구속력이 없어 실효성 측면에서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회원국간 분쟁해결기능도 상소기구 운영에 불만을 표명해 온 미 행정부가 신임 위원 임명 동의를 거부, 지난 2019년 12월부터 정지된 상황이다. WTO의 분쟁 해결 절차에서 대법원 역할을 하는 상소 기구는 규정상 판사 격인 상소위원 3명이 분쟁 1건을 심리하는데 미국의 보이콧으로 후임 상소위원 인선이 중단돼 위원 정족수가 채워지지 않고 있다.

서진교 박사는 WTO가 이같은 구조적 위기에 처한 근본 이유로 “미국과 중국의 대립과 갈등”을 꼽는다. 164개국에 달하는 회원국간의 이해관계 조정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 협상을 주도하는 주요국 사이에서 합의가 이뤄지면 다른 회원국은 그 결과를 따라가는 것이 이제까지의 WTO의 의사결정 구조였는데, 미국과 중국이 주요 협상의제를 두고 서로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타협안 도출이 어렵게 됐다는 것이다.

서 박사는 “미·중간 벌어지고 있는 대립과 갈등은 세계 경제와 무역에 불확실성을 배가시키면서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면서 “WTO 농업협상이 계속되고는 있으나 미중간 타협이 이뤄지지 않는한 시장접근분야에서 구체적 성과를 도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RCEP과 CPTPP, 메가FTA의 확산

이처럼 WTO가 지탱해 온 다자무역체계가 주춤하는 사이 이해당사국간 양자 차원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 가속화됐다. 우리나라도 2004년 발효된 한·칠레 FTA를 시작으로 57개국과 17건의 FTA를 체결했으며, 이 외에도 총 19개국과 4건의 FTA가 서명·타결됐고, 현재 총 11개국과 6건의 FTA 협상을 진행 중이다.

2012년 협상 개시를 선언한 이후 8년 동안의 지리한 협상 끝에 2020년 11월 15일 최종 타결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은 아시아와 태평양을 단일 자유무역지대로 엮는 다자간 FTA협정이다. 아세안 10개국(캄보디아·라오스·미얀마·인도네시아·필리핀·태국·싱가포르·브루나이·말레이시아·베트남)을 비롯 한국·중국·일본·호주·뉴질랜드 등 총 15개국이 참여했다.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의 출발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를 표방하며 급성장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의도로 시작했지만, 2017년 트럼프 전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TPP를 탈퇴, 나머지 11개국(일본·호주·뉴질랜드·캐나다·멕시코·칠레·페루·말레이시아·베트남·싱가포르·브루나이)이 CPTPP로 이름을 바꿔 2018년 출범했다. CPTPP 11개 회원국은 전 세계 GDP의 13%, 세계무역의 15%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중국과 대만이 잇따라 CPTPP 가입을 전격 신청하면서 전략적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RCEP과 CPTPP는 메가 FTA인 만큼 중복 참여하고 있는 국가들이 있다. 2개 모두 참여하는 나라는 일본과 말레이시아, 베트남, 싱가포르, 브루나이, 호주, 뉴질랜드 등 7개국이며 경제블록별 우리나라와의 수출 규모는 RCEP 2690억 달러, CPTPP 1260억 달러에 달한다.

협정 내용상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은 CPTPP가 RCEP보다 개방 수준과 규범이 훨씬 더 높다는 것이다. CPTPP의 상품 분야 관세양허율(관세 즉각 철폐 혹은 단계적 감축)은 95~100%(품목 수 기준)에 이른다. CPTPP에 가입하려면 기존 11개 회원국이 모두 찬성해야 가능하며, 기존 가입국에 견줘 시장개방 정도가 높아지게 된다. 그밖에 전자상거래, 지식재산권 보호, 국영기업, 노동, 환경 등 글로벌 통상질서를 규율하는 높은 수준의 규칙을 준수해야 한다.

 

농업개방 가속 ‘커지는 불안’

문제는 개별국가간 FTA로 이미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업부문의 피해다. 특히 이르면 이달 말 정부가 CPTPP 가입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농축산업계의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정부는 CPTPP 가입에 대비 위생검역·수산보조금·디지털통상·국영기업 등 4대분야 국내제도 정비 방안을 마련하고, 별도의 경제·안보장관급 협의체인 ‘대외경제안보 전략회의’를 신설한 바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연구보고서(CPTPP 발효와 농업통상분야 시사점)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CPTPP 9개 회원국과 체결한 FTA의 농식품시장 자유화율은 평균 78.4%지만, CPTPP 회원국의 평균 관세철폐율은 96.3%에 달한다. 일본의 경우 CPTPP 체결과정에서 쌀 관세를 유지하는 대가로 호주에 8400톤의 쌀 무관세 쿼터를 제공했다.

무엇보다 CPTPP에는 새로운 무역이슈가 포함돼 있고, 기존 WTO 규정보다 대폭 강화된 조항이 반영됨에 따라 농축산물 수출국에 유리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가장 대표적인 규정이 SPS(동식물위생검역) 규정으로, 병해충과 가축질병의 지역화 및 구획화 인정, 상대국 SPS 조치의 동등성 인정, 기술적 협의기한 180일 한정 등의 조치로 수입국의 권한을 대폭 제한해 농축산업에 막대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특히 구획화가 적용될 경우 기존에 가축전염병 발생시 국가단위나 지역단위로 금지해오던 것을 농장단위로 좁혀야 하기 때문에 수입 규제에 훨씬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농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RCEP에 이어 CPTPP까지 연이은 초대형 FTA로 농업부문의 막대한 피해가 예상되지만 FTA폐업지원제 등 주요 피해보전사업은 지난해 끝났고, 피해보전직불제도 2025년까지 한시적으로 시행되는 등 정부의 지원대책은 오히려 축소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특히 후발주자로 참여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기존 회원국들의 동의를 얻어야 하고, 그러려면 강력한 시장개방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을텐데, 결국 또다시 농업부문의 일방적 희생이 불가피한 것 아니냐”고 걱정했다.

격변하는 국제 통상환경의 변화 속에 통상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정부의 FTA 행보는 거침이 없다. 이 속에서 농업부문의 생존 전략은 무엇이 되어야할지 농업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김선아 기자 kimsa@agrinet.co.kr

제작지원: 2021년 FTA이행지원 교육홍보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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