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농산물값 폭·등락, 경매제 때문?

[한국농어민신문 김관태 기자]

공영도매시장인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에 시장도매인제를 도입하는 문제를 놓고 치열한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시장도매인제 도입을 추진하는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에서는 20년 넘게 이어져 오는 경매제를 시장도매인제와 경쟁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진은 가락시장 전경.

우리나라 농산물 유통의 중심,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이하 가락시장)에 시장도매인제를 도입하는 문제를 놓고 논란이 뜨겁다. 시장도매인제란 경매를 통해 농산물 가격을 결정하지 않고, 생산자인 농민과 시장도매인이 직접 거래하는 방식을 말한다. 최근 KBS 시사기획 창 ‘농산물 가격의 비밀’ 편이 보도되면서 이 논란은 더 달아올랐다. 방송은 경매 중심의 농산물 유통 구조가 농산물 가격 폭·등락 원인인 것처럼 비추며, 문제 해결의 대안으로 시장도매인제를 제시했다. 농민들은 혼란스럽다. 그동안 밭에서 산지폐기를 해야 했던 이유가, 헐값에 농산물을 넘겨야 했던 이유가 경매제 때문인지, 시장도매인제를 도입하면 이런 문제가 해소되는지에 대한 물음이 들어서다. 뜨겁게 달아오른 시장도매인제 논란, 어떤 문제가 있는지 짚었다. 

 

 

#경매제는 왜 도입됐나?

최근 신문과 방송을 가리지 않고 가락시장 시장도매인제 도입을 둘러싼 공방이 일고 있다. 특히 지난달 보도 된 KBS 시사기획 창에서는 가락시장의 불공정한 경매로 농민은 헐값에 농산물을 넘기는데, 소비자는 비싼 농산물을 사먹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시장도매인제 도입을 통해 이를 해결할 수 있지만 도매법인과 결탁한 농민단체와 농업전문지의 반대로 개혁이 가로막혀 있다는 식의 방송으로 논란은 더 가열된 상태다. 

과연 그런가? 전체적인 내용을 알려면 경매제가 도입된 이유부터 살펴봐야 한다. 1985년 개장한 가락시장은 용산시장에서 영업하던 위탁상인들이 이주하면서 운영이 시작됐다. 당시엔 산지 농민들이 상인들에게 농산물을 위탁하면 그 농산물을 소비자에게 팔아 대금을 정산하는 식으로 거래가 이뤄졌다. 

여기서 문제는 상인들이 얼마에 팔았는지 정확히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산지 농민들은 상인들이 얼마에 팔았다고 하면, 가격에 대한 정보가 없으니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 출하하고 돈을 떼이는 일도 많았다. 본보의 전신인 ‘농산물유통정보지’ 창간 배경도 이러한 농민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이에 공영도매시장인 가락시장에 경매제가 도입된다. 경매제의 가장 큰 특징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투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도매법인은 전국 각지에서 농민들이 출하한 농산물을 모아, 가장 높은 가격을 부르는 중도매인에게 낙찰하고, 그 금액은 낙찰되는 순간 바로 드러나 수수료를 제외한 금액이 농민들에게 지급된다. 

다만 경매제의 경우 도매상과 직접거래 하는 것보다 경매시간이나 물류이동 측면에서 효율성이 떨어진다. 이에 1990년대 후반 시장도매인제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산지 농가가 시장도매인에게 직접 물건을 넘기는 것으로, 2006년부터 강서농수산물도매시장에 시장도매인제가 도입돼 운영되고 있다. 


#농산물 가격 급등락 경매제 때문? 

이에 강서시장에 도입 중인 시장도매인제를 가락시장에도 도입하자는 것이 논란의 핵심이다. KBS 보도 취지도 그렇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제도 도입의 당위성만 강조하려다 보니 온갖 오해와 억측이 나오고 있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이하 서울시공사)가 최근 내놓은 홍보 브로슈어만 봐도 알 수 있다. 서울시공사는 가락시장에 시장도매인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경매제는 매일의 시장 반입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어 똑같은 상품이라 하더라도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내립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 시장도매인제는 경매제와 달리 농산물 거래 가격이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괴리가 있다. 시장도매인제도 경매제와 마찬가지로 그날그날 상황에 따라 가격이 변동한다. 올해 들어 강서 시장도매인시장에서 거래된 감자(20kg·특) 평균가를 보면 최저 4만5404원(1월 5일)에서 최고 7만1771원(1월 14일)까지 차이가 난다. 

하루만 놓고 보더라도 각 시장도매인별로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15일 기준 강서 시장도매인시장에서 거래된 감자(20kg·특) 거래금액을 보면 최저 8000원에서 7만600원까지 차이가 난다. 
이는 서울시공사가 발주한 ‘강서농산물도매시장 시장도매인제 운영성과 분석 및 발전전략’ 연구결과에서도 알 수 있다.

가락시장 경매제와 강서시장 시장도매인제를 비교한 결과, 어떤 품목은 경매제의 가격변동성이 크고, 어떤 품목은 시장도매인제의 가격변동성이 크게 나타났다.  다시 말해 가격변동성은 시장도매인제도 마찬가지며, 이는 농산물 특성상 그날그날 수급 상황에 따라 가격이 변동되는 문제지 단순히 거래제도의 선택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지난 2012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진행한 ‘강서도매시장 시장도매인제 성과분석 및 발전방안 연구’에서도 마찬가지 지적이 나온다. 연구보고서는 ‘두 시장의 가격변동 패턴의 차이가 없으며, 거의 동일한 패턴을 형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실제 출하농가들도 이러한 점을 인식하고 있다. 서울시공사가 가락시장과 강서시장 시장도매인 출하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거래제도별 만족도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경매 출하 경험자의 23.8%, 시장도매인 출하 경험자의 33.0%가 출하가격 불만족 이유로 ‘가격 변동이 크고 잦다’는 점을 꼽았다. 이런 이유로 농산물 가격 불안이 마치 경매제에서 기인한 것처럼 몰아가서는 문제 해결이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매제 불공정한 거래제도인가?

농산물 가격의 경락가격은 들쑥날쑥 할 수 있어도, 일단 결정된 경매가격은 모두에게 드러난다. 이는 가락시장뿐만 아니라 전국의 지방도매시장과 지역농협 공판장도 마찬가지다. 과거 수기식(손가락으로 가격을 제시하는) 경매에서는 부정 시비가 발생했으나, 지금은 전자경매로 이뤄지고, 경매사 컴퓨터 위로 CCTV까지 설치된 상태다.

또 경매사들이 민간기업인 도매법인 소속으로 공정성이 담보될 수 있겠냐는 의문도 제기하지만, 기본적으로 경락가를 높이려는 노력이 도매법인에게 수수료 이익이 되고, 이는 농가 수취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갖고 있다. 

‘1초 경매’도 마찬가지다. 자극적 단어로 마치 가락시장에서 농산물을 보지도 않고, 경매하는 것처럼 호도되지만, 경매 시작 전 경매사와 중도매인들이 경매장에 나와 거래될 농산물을 살핀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출하자 정보와 그날그날 재고에 따라 어느 정도 가격이 적정한지를 알고 경매에 임하기 때문에 전자경매 특성상 수 초 만에 경매가 이뤄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시장도매인제의 경우 어떤 가격 결정구조를 갖는가. 서울시공사는 농민이 시장도매인과 가격을 미리 협상해 출하할 수 있다고 하지만, 시장도매인의 매수판매 비율은 약 34%에 불과하다. 나머지 66%는 위탁거래 즉, 농가가 물건을 출하하면 이를 시장도매인이 소매상에 판매한 뒤 농민들에게 대금을 정산해 주는 식이다. 경매제의 경우 위탁판매 형태지만 낙찰과 동시에 경락가격이 드러나는 반면, 시장도매인제 위탁판매는 시장도매인이 신고하는 판매가격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 

애초 시장도매인 도입 당시 가격을 미리 정하는 매수거래만 허용키로 논의가 진행됐으나, 상인들의 반발로 매수거래와 위탁거래 모두 허용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시장도매인제 도입 왜 반대하나

이론상으론 유통단계 줄지만
인위적 비용 절감은 어려워
경매물건 가져와 판매 우려도


앞선 설명대로 시장도매인제는 경매를 통해 농산물 가격을 결정하지 않고, 생산자인 농민과 시장도매인이 직접 거래하는 방식이다. 경매 과정이 빠지다보니 이론상 유통단계가 줄어든다. 서울시공사는 이렇게 절감된 유통비용이 농민과 소비자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하지만, 전문가들은 각 단계별 유통 주체가 있고 그 주체 별로 고유의 기능을 담당하는 측면이 있어 인위적으로 유통비용이 줄어들긴 어렵다는 게 대체적 시각이다. 

또 거래규모가 커질 경우 물량 확보를 위해 이미 경매를 거친 물건을 구매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한 유통인도 지방도매시장에서 이미 경매를 마친 물건을 시장도매인이 가져와 판매하는 일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경우 유통단계는 축소되지 않는 것이다. 

반대로 경매에 참여하는 중도매인이 시장도매인 물건을 사오는 경우는 어떨까. 중도매인이 시장도매인 물건을 쉽게 살 수 있다면, 경매에 나온 농산물의 구매 동기가 떨어지기 때문에 경락가격이 하락하게 된다. 이에 농안법(농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에서는 동일 시장 내에서 시장도매인과 중도매인 간 거래를 금지하고 있지만, 경매제와 시장도매인제가 공존하는 강서시장에서는 이러한 불법거래가 있다는 것이 농식품부 판단이다. 또 이것이 가락시장 내 시장도매인제 도입을 우려하는 핵심 이유이기도 하다. 

서울시공사는 가락시장 내에서 두 제도가 공존하며 조화롭게 발전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두 제도가 공존하는 강서시장에서의 경락가가 다른 도매시장과 비교해 제일 낮다는 점에서 두 제도의 공존은 생각처럼 쉽게 볼 문제가 아니다. 

김관태 기자 kimkt@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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