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김경욱 기자]

늦가을과 초겨울에 이미 출하가 마무리됐어야 할 김장용 가을배추가 아직 산지에 있다. 출하비도 보전되지 않는 배추 가격 약세가 계속되면서 계약조차 파기되고 있는 상황. 새해 들어서도 여전히 배추 가격은 바닥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배추 농가 김의성 씨가 밭에서 출하되지 못한 김장용 가을배추를 바라보고 있다.

“석 달 전 나갔어야 했는데…” 현지서 만난 김의성 씨 ‘한숨’
지인 통해 산지유통인과 거래, 계약금만 받고 출하 엎어져


“석 달 전에 출하됐어야 할 가을배추가 아직도 밭에 있습니다.”

땅끝마을에서 겨울배추가 출하되고 있는 1월 초, 김치냉장고에나 있어야 할 김장용 가을배추를 밭에서 바라봐야 하는 농민 심정은 어떨까. 

지난 5일 가을배추 주산지인 전북 부안군 줄포면의 한 배추밭에서 만난 김의성(61) 씨는 “오히려 폭설로 눈에서 보이지 않으니 나으려나…, 몇 해 전 간이식까지 받았는데 오죽하면 연말연시를 술로 보냈겠느냐”고 참담한 심정을 전했다. 

김의성 씨는 2018년부터 7920㎡(2400평)의 밭에 가을배추를 심었다. 농협과 거래한 첫해는 가격 하락으로 산지 폐기했고, 다행히 2019년은 가격이 지지돼 출하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다 유통인과 계약한 첫해인 지난해 가격 폭락 속에 계약이 일방적으로 파기됐고, 10월부터 김장용으로 나가야 할 배추들이 여전히 밭에 묶여 있다. 

김 씨는 “농협으로 출하하면 우리가 출하까지 다 맡아야 해서 힘이 든다. 그래서 올해엔 지인을 통해 산지유통인과 거래했고, 1800만원에 계약이 이뤄져 바로 계약금 500만원을 받았다”며 “그래서 맘을 놓고 있었는데, 10월 말 수확기에도 거래를 하지 않아 애가 타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는 “그러다 11월 들어 배추 가격이 폭락해 가격을 500만원 깎아 달라고 했고,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한다고 했는데 11월 중순에 결국 거래를 할 수 없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다”며 “이미 거래를 못 한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는 배추가 웃자란 상태라 상품성이 없었다. 일찍 포기한다고 말해줬다면 어떻게든 출하는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확기 지나서야 ‘일방 통보’웃자란 배추 상품성 확 떨어져
유통 관계자 “출하 땐 되레 밑져 계약금 주고도 거래 못할 지경”


결국 김치용으로 상품성이 사라진 김 씨의 배추는 최근 단돈 100만원에 쌈배추용으로 넘겨야 했다. 하지만 비닐제거, 토지 정리 등으로 100만원을 지불해 사실상 계약금 500만원 이외 김 씨에게 들어온 돈은 없었다. 

김 씨는 “내 밭이고 농기계가 몇 개 있어 그나마 손해가 덜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자비, 비료·농약값 등 900만~1000만원 정도 들어갔다. 계약금으로 500만원을 받았으니 농사지어 오히려 500만원 손해를 보게 됐다”며 “폭설로 (쌈배추용도 아직 출하가 안 돼) 여전히 배추가 밭에 쌓여있는 걸 보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 지역에서 피해는 김 씨만의 일로 그치지 않았다. 여러 농가가 제때 출하를 하지 못해 헐값에 배추를 넘겼다는 전언이 나오고 있다.  

김 씨는 “들리는 얘기로는 지역에서 3만~4만평 규모의 가을배추가 거래되지 않았다고 한다. 당장 아는 농가도 나와 같은 피해를 봤다”고 밝혔다. 

부안군 보안면에서 배추 농사를 짓고 있는 임상호(64) 씨는 “2000평 가을배추를 재배해 유통인과 구두계약을 맺고 계약금을 받았지만 11월 20일경 전화로 거래를 포기한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상품성이 없어 헐값에 배추를 넘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산지유통인의 일방적인 계약 통보로 농가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유통인 역시 상황은 좋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산지유통 관계자는 “계약금을 주고도 거래하지 못할 지경이면 어느 정도 상황인지 짐작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출하하는 게 오히려 밑지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에서도 한 박자 빠르고 과감한 수급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밝혔다. 

산지를 더욱더 힘들게 하는 건 계속되고 있는 계속되는 한파와 폭설로 소비가 얼어붙어 다른 작목 시세까지 동반하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생산비는 치솟고 있는데 말이다. 

김의성 씨는 “토마토도 재배하고 있는데 요즘 토마토값도 작년 절반밖에 나오지 않는다”며 “코로나19에 한파, 폭설까지 이어지니 농산물 소비가 살아날 틈이 없어 보인다. 거기에 난방비 등 생산비도 어느 때보다 많이 들어가니, 누가 귀농한다고 하면 뜯어말리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고 현 농심을 전했다. 

김경욱 기자 kimk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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