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슬(서와)/청년농부·경남 합천

[한국농어민신문]

아주 더디긴 했지만, 세상은 거리에서 부른 노래만큼 나아졌다는 말이 쓸쓸한 위로가 되었다. 지금 우리가 거리에서 부르는 노래와 외치는 구호가 언젠가는 꼭, 당연한 삶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작은 희망을 붙잡아보기로 했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날이면 식구들과 둘러앉아 식구 모임을 연다. 어떤 마음으로 한 해를 보냈는지, 새로운 한 해에는 어떤 바람과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찬찬히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도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마음과 생각이 정리되기도 한다. 그렇게 다시, 새로운 한 해를 살아갈 힘을 채운다. 

올해도 어김없이 식구 모임이 열렸다. 기다렸던 시간이지만 기운이 없었다. 식구 모임에서 꺼낸 내 첫 마디는 “지금 나는 너무 슬퍼요”였다. 새해를 맞는 시간을 따뜻하게 보내고 싶었지만 슬픈 마음을 숨길 방법이 없었다. 

2020년 12월 29일 늦은 밤,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설치 사업이 행정심판에서 인용되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원주지방환경청의 환경영향평가 부동의 처분으로 멈추어 있던 케이블카 사업이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지리산 산악열차 문제도 아직 해결된 것이 없는데, 이번에는 설악산이라 했다.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에 대한 다른 뉴스들을 찾아보았다. 지리산 산악열차와 마찬가지로 오색 케이블카를 설치하려는 곳 역시 개발이 금지된 지역이었다. 국립공원일 뿐 아니라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이었고, 백두대간 보호구역인 곳이었다. 그리고 이미, 천연보호구역에 설치되는 케이블카가 야생 동식물의 삶터를 망가뜨리고, 생태계를 혼란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제동이 걸렸던 사업이었다. 이밖에도 케이블카 설치 사업을 그만두어야 할 이유는 수두룩했다.

행정심판 결정이 나던 날, 머릿속이 복잡해 밤을 꼬박 새웠다. 남원 산내에 사는 친구들은 날마다 ‘지리산 산악열차 반대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나도 경남 도청 앞에서 지리산 산악열차를 반대하는 피켓과 경남 기후위기 비상대책위 결성을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했다. 또 설악산 케이블카를 막아 내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거리에 설 것이다. 새로운 해가 떠도 세상에 복잡한 문제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뒤로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피곤했지만 마음이 더 지치지 않으려면 몸을 움직여야겠다 싶었다. 마침 이웃 마을에 사는 봄날샘(서정홍 농부시인)에게 운동 삼아 저수지 둘레길을 걸으러 가자는 문자가 왔다. “좋아요. 엄마도 걷고 싶다고 해요. 같이 나갈게요!”하고 답장을 보냈다. 봄날샘과 경옥 이모(봄날샘 아내), 엄마와 나는 한 시간 정도 가회 저수지 둘레길을 함께 걸었다. 이모와 엄마가 이야기를 나눌 동안 나는 봄날샘과 나란히 걸었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져 “봄날샘은 농부가 되기 전에 무슨 일을 하셨어요?”하고 물어보았다.

“도시에 살 때는 공장에서 월급 받는 노동자였지. 그때만 해도 나라 살림이 워낙 가난해서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나처럼 공장에 다니는 아이들이 더러 있었어. 열네 살 때부터 공장에서 일했으니까 이십 년 넘게 노동자로 살았어. 그때는 하루에 60원을 받고, 12시간 넘게 일했어. 수요일을 빼고 날마다 잔업을 했지. 일요일은 거의 특근을 하고. 가끔 철야 작업까지 했어. 그러니 한 달에 잔업과 특근 시간이 100시간이 넘었지. 노동자가 철야 작업을 하다가 사고로 죽었다는 소문을 심심찮게 듣고 살았던 시절이었으니까. 그 시절에 친구들과 노동법을 배우고 노동운동을 했어. 그때 이야기로 소설을 쓰라면 몇 권은 쓸 수 있을걸. 그러다 김영삼 정권 들어서면서 공장 생활을 그만뒀어. ‘생명 공동체 운동’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시작했지. 그렇게 농민운동을 하다가 여기까지 왔어.”

봄날샘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생각이 많아졌다. “지금도 여전히 노동자들은 현장에서 죽어 나가요. 새해에도 중대 재해 기업 처벌법 제정을 위해 단식을 하고 계신 분들이 있고요. 봄날샘이 노동운동을 하던 그때보다 지금 세상이 더 나아졌나요? 끝까지 소리를 내다보면 정말로 바뀌는 게 있을까요?”

봄날샘은 잠시 생각하시더니 한 마디 한 마디 천천히 말을 이어가셨다. 

“우리가 거리에 나와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른 만큼 세상은 바뀌었어.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세상은 조금씩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거라 믿어. 지금도 각자의 자리에서 애쓰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 무엇보다 ‘나’를 단련시키는 일이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해. 어떤 처지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야.”

아주 더디긴 했지만, 세상은 거리에서 부른 노래만큼 나아졌다는 말이 쓸쓸한 위로가 되었다. 지금 우리가 거리에서 부르는 노래와 외치는 구호가 언젠가는 꼭, 당연한 삶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작은 희망을 붙잡아보기로 했다.

지리산 산악열차와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사업을 막아 내기 위해, 중대 재해 기업 처벌법을 이루어내기 위해, 오늘도 거리에 서 있는 사람들이 칼바람 부는 이 시간을 무사히 살아내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나도, 내가 선택한 길을 용감하게 걸어갈 수 있기를, 하루하루 땅을 일구는 농부의 삶을 지켜가기를, 세상에 자연스러운 것이 하나라도 더 살아남기를 기도했다. 그렇게 간절한 기도를 드리는 새해 첫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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