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주현주 기자]

첩약 건강보험 시범사업하며
투명한 유통·조제 위해 도입 
품목허가 때 쓰는 13자리 코드
그대로 가져와 원산지는 누락

약용작물 농가 “이윤 내기 위해
값싼 수입산 사용 많아질 것
원산지 이력 추적토록 개선을” 


정부가 첩약(한약) 건강보험 시범사업을 시행하면서 한약재의 투명한 유통·조제를 위해 바코드 형태의 ‘한약재 표준코드 시스템’을 도입했지만, 국내 약용작물 농가는 표준코드에 원산지 표기가 빠져 있어 실효성이 없다는 목소리다. 이에 한약재 원산지를 추적할 수 있는 제도 보완이 요구된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지난달 20일 첩약 건강보험 적용 시범사업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첩약 건강보험 적용 시범사업은 한의 치료 중 건강보험 적용 요구가 높은 첩약에 건강보험 시범 수가를 적용해 국민 의료비 부담을 덜고, 급여화를 통한 한의약 안전관리 체계 구축을 위해 추진됐다.

이에 2023년 10월까지 3년 동안 안면신경마비, 뇌혈관질환 후유증(65세 이상), 월경통 환자는 시범사업 참여 한의원을 방문해, 진찰·처방 후 치료용 첩약을 시범 수가로 복용할 수 있다.

전체 한의원의 약 60%인 9000여 개 한의원이 이번 시범사업에 참여하며, 이들 기관은 전국적으로 고르게 분포돼 있어 환자들이 이용하기 편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환자는 연간 1회 최대 10일까지 시범 수가의 50%만 부담하고 첩약을 복용할 수 있으며, 10일 기준 약 16만~38만원으로 복용하던 첩약을 약 5만~7만원만 부담하게 된다. 10일 이후 동일 기관에서 동일 질환으로 이어서 복용할 때도 비급여가 아닌 시범 수가(전액 본인 부담)로 복용하게 된다.

복지부는 이번 시범사업 실시로 한약재 유통부터 최종 조제까지 체계적인 안전관리가 가능하게 됐다며, 한약재 안전성 강화를 위해 탕전실 기준 마련, 조제 내역 제공, 한약재 규격품 표준코드 시스템을 도입한다고 밝혔다. 한약재 표준코드는 한약재 제조업체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한약재 품목(허가) 신청을 한 뒤 부여받게 되고 이 표준코드를 바코드에 부착해 한약재를 출고하게 된다.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한방 의료기관은 첩약에 사용된 한약재 표준코드가 있어야 건강보험료 청구가 가능하다.

그러나 문제는 한약재 표준코드를 통해서 해당 한약재 원산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한약재 표준코드 시스템 도입 시행 기관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현재 한약재 표준코드인 13자리 숫자를 바코드 형태로 부여하고 있는데, 이 숫자는 국가코드, 업체식별코드, 품목코드, 검증번호만 포함되고 한약재 원산지 코드는 포함되지 않았다.

황대능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의약품관리종합정보센터 의약품정보관리부장은 “이번에 도입하는  한약재 표준코드는 식약처에서 한약재 제조업체에 한약재 품목허가를 낼 때 사용하는 코드를 그대로 가져온 것으로 한약재 원산지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이수연 보건복지부 한의약정책과 사무관은 “한약재 표준코드에 원산지는 포함되지 않는다. 이는 추후에 논의를 해야 하는데, 지금 시점에선 식약처의 품목허가를 기준으로 부여하고 있어 식약처의 형식대로 했다”며 “한약재 제조업체가 원산지 코드 구분을 안 했다면 여기서도 그 기준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국내 약용작물 농가는 첩약 건강보험 적용이 국산 한약재 소비 촉진과 연관 산업의 발전, 소비자 신뢰 구축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한약재 표준코드 시스템에 원산지를 포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국내 한 약용작물 농가는 “첩약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가격이 낮아져 국내산 한약재 수요가 늘어나리라 생각하지만, 실상은 다르다”며 “한약재 제조업체에서 한약재 원산지 코드를 부착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더 많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값싼 수입산 한약재를 더 많이 쓰게 될 수 있고, 한의원에서도 마찬가지다”고 설명했다.

차선우 한국약용작물학회장은 “한약재 표준코드 시스템을 통해서든 다른 별도의 제도 보완을 통해서든 근본적으로는 한약재의 원산지 이력추적이 가능해야 한다”며 “전면 시행이 어렵다면 국내에서 가장 많이 재배하고 있는 10개 품목이라도 생산 이력을 추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한약재 원산지 표시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첩약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해도 국내 약용작물 생산 농가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번 첩약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한의원의 경우 첩약의 조제·탕전 후 처방·조제 내역을 제공할 때 한약재 원산지를 의무적으로 표시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실효성은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한국생약협회 관계자는 “처방·조제 내역은 여러 한약재를 섞어서 표시되는 건데 이 모든 한약재의 원산지가 투명하게 제공될지가 의문이다”며 “가장 확실한 건 제조업체에서 원산지를 표시하도록 하는 것이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한약재의 원산지 추적이 어려운 상황에서 한약재 바코드 시스템을 도입한다고 해도 크게 실효성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현주 기자 jooh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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