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2030, 그들이 사는 법] 염치보다 중요한 것

2025-11-25     한국농어민신문

[한국농어민신문] 

지금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의 과정을 함께 음미했으면 한다. 각 주체들이 스스로의 언어로 말하고 들을 수 있는 대화의 장이 열렸으면 좋겠다. 지금처럼 '선정된 것 만으로도 감지덕지' 라며 염치를 찾는 상황에 머문다면, 2년간 공돈 15만원이 들어오는 것 말고는 남는 것이 없을 것이다. 

| 김현희 청년농부·전북 순창

농어촌기본소득 시범사업 대상으로 내가 살고 있는 순창이 선정됐다. 인구감소지역인 69개 지역중 7곳만 선정된 것인데 그 안에 순창이 들어간 것이다. 지역은 한동안 축제분위기가 이어졌다. 수많은 인구정책 사업으로도 끝없이 줄어들기만 했던 인구가 단숨에 수백명이 늘어났다. 아무런 조건 없이 지역민이라면 누구나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모두가 열광했다.

기뻐하던 분위기가 사그라들고 현실적인 문제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디서 재원마련을 할 것인가 하는 물음이 나왔다. 생각보다 낮은 국비와 도비 지원소식이 들려오자 불안은 더 깊어졌다. 그러면서 내년부터는 어떤 사업들은 아예 삭감된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이로 인한 새로운 갈등의 국면이 열렸다.

나는 이 지면에 세부적인 갈등의 내용을 공유할 생각은 없다. 어떤 예산을 줄여야 한다던지, 어떤 예산은 절대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이 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업은 정말 너무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서, 어느날 갑자기 우리에게 주어졌다. 받는 입장에서도 얼떨떨할 정도다. 이때 돈을 지원받는다는 결과에만 집중하면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받고 싶어도 떨어진 수많은 지역들이 있으니 선정된 지역은 그냥 '감사히 잘 받고 쓰겠습니다' 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주체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그저 시혜적으로 주어지는 15만원이 정말로 지역에 변화를 가져올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점차 들기 시작했다. 내년도 예산과 관련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염치도 없다', '힘들게 선정됐는데 불만이 많다', '욕심부린다' 등의 비난이 쏟아지자 나의 마음은 점점 더 땅으로 꺼질듯 우울해졌다. 염치가 없다라는 말 앞에 나는 오랫만에 무기력함을 느꼈다.

어떤 지원사업들은 정말 무기력함을 생산한다. 의욕이 넘치는 사람을 선발해 무기력한 사람으로 전락시켜버린다. 언제 결정되는지 어떻게 교부되는지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고, 수많은 증빙과 제약으로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진행하는 모든 과정마다 '불만이면 받지마, 우린 아쉬울 것 없어' 라고 말하고 있는것만 같다. 그래서 열심히 하고 싶은 처음의 기대와 생각들이 나중에는 '어떻게 되도 좋으니 그냥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하는 생각으로 끝맺게 되고야 마는 것이다.

농어촌기본소득 시범사업이 그런 사업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이 사업이 단순히 소멸하는 지방에 내려주는 시혜적인 사업이고, 받는 우리는 수혜자로만 머물게 된다면 이 사업은 원래 목적과는 다르게 지역을 더욱 무기력하게 만드는 사업이 될지도 모른다. 어떤 예산은 그대로 지켜져야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싫으면 받지마' 라던지, '그럼 당신은 그전꺼 받고 농어촌 기본소득은 받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이 기본소득을 그냥 운 좋게 받는 공돈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다.

시범사업을 성공적으로 운영한다는 뜻은 아무런 잡음 없이, 갈등과 고통없이 진행된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전혀 성공적이지 않다. 성공적인 운영은, 운영 과정에서 당연하게 마주치게 될 재원마련의 어려움, 이해당사자들 간의 충돌, 의견 대립 등을 두려워하지 않고 논의의 주제로 삼는 것이다. 그 가운데서 주민들과 각자의 주체들이 당사자성을 가지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 우리 지역만의 방안을 찾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이 사업으로 기대할 수 있는 민주적인 거버넌스의 시작이고 지역에 기대해볼 수 있는 진정한 사업의 효과일 것이다.

지금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의 과정을 함께 음미했으면 한다. 각 주체들이 스스로의 언어로 말하고 들을 수 있는 대화의 장이 열렸으면 좋겠다. 지금처럼 '선정된 것 만으로도 감지덕지' 라며 염치를 찾는 상황에 머문다면, 2년간 공돈 15만원이 들어오는 것 말고는 남는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갈등을 디딤돌로 삼아 각자가 주체로 서는 경험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지역에 활력을 되살리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