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푸드비전2030’, 한국 농업정책에 주는 교훈
[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아일랜드가 추진 중인 국가 농식품 전략인 ‘푸드비전(Food Vision) 2030’이 우리 농업·농촌 정책에 시사점을 주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아일랜드는 이 10년 단위 계획을 통해 지속가능한 식품 시스템을 국가전략의 최상위에 두고 전환의 속도와 방향성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이는 인구 500만명의 소국임에도 생산량의 90%를 180개국에 수출하는 농업(축산) 수출 강국으로 발돋움한 핵심 동력으로 꼽힌다.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농정원)은 24일 ‘글로벌 트렌드’ 포럼을 열고 아일랜드 사례를 공유하고 국내 정책 방향을 모색했다.
푸드비전2030의 배경과 특징은
생산부터 기후까지 ‘식품 시스템 전체’ 하나로 접근···5년 단위 조정 ‘롤링 전략’ 돋보여
도날 콜먼(Donal Coleman)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축산소위원회 의장이 이날 발표한 기조연설 내용에 따르면 아일랜드는 농업 중심 사회, 기후와 지형, 식민 지배, 대기근 등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와 유사하게 농업·농촌 공동체가 형성돼 왔지만, 1973년 EU 가입을 계기로 농업 중심에서 농식품 중심 산업 구조로 전환했다. 글로벌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10년 단위의 순환형 농식품 전략을 수립해 왔으며, 2021년 발표된 푸드비전2030 전략은 4개 미션과 22개 목표, 218개의 실행 과제로 구성돼 있다.
전략의 핵심은 식품 시스템 전체를 하나로 보는 접근이다. 생산·가공·유통·소비뿐 아니라 기후·환경·건강까지 묶어 장기 전략을 설계하고, 환경·경제·사회의 핵심 지표를 ‘국가 대시보드’(성과 모니터링 시스템)로 관리해 이행 상황을 정량적으로 추적한다는 점에서 기존 부문별 정책과 차별화된다.
‘롤링 전략’이라는 유연한 정책 구조도 돋보인다. 과학기술, EU 환경 규제, 시장 상황 등에 따라 5년 단위로 조정 가능한 ‘살아있는 전략’으로 설계해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해관계자 참여 기반 거버넌스도 특징이다. 전략 수립 단계에서부터 농업인·가공업자·정부·학계·소비자 등이 참여하는 위원회를 구성해 정책 형성과 실행 과정 전반에 의견을 반영한다. 콜먼 의장은 “정부가 정책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방식이 아니라 주민과 산업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담아내는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데이터 기반의 환경 관리에서도 앞서 있다. 농가 단위 온실가스 배출량과 토양 탄소흡수량을 산출하는 ‘AgNav’ 플랫폼을 개발해 농가별 감축계획 수립과 EU 규제 대응을 지원하고 있다.
국내에 주는 시사점은
“연결성·정책 보완 시스템 등 배울 점···지속가능한 식품 시스템 구축 노력해야”
전문가들은 아일랜드 사례를 통해 국내 농업정책 방향의 시사점을 모색했다.
서진교 GS&J 인스티튜트 원장은 “푸드비전2030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가 연결성”이라며 “생산·가공·소비·폐기 처리 등 전 과정 가치사슬 단계마다 이해관계가 다르고, 참여하는 행정 부처 간 칸막이도 존재한다. FAO나 UN 등 국제 기준 지침을 국내로 적용하는 과정 등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을 어떻게 조율했을지가 우리에게 좋은 경험이고 배움이 된다”고 짚었다.
좌장을 맡은 김창길 스마트치유산업포럼 원장은 “아일랜드가 앞서가는 이유로 데이터 기반과 국제적 기준에 맞는 ‘롤링 시스템’을 들 수 있다”며 “우리도 5년 단위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해외 여건에 맞게 정책을 변화하고 이행지표를 설정해 성과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등 보완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런 맥락에서 농촌진흥청과 농정원 등의 공공기관 역할과 기능도 여건에 맞춰 변화하거나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윤지현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지속가능한 식품 시스템 구축이 국제적으로 중요하게 다뤄지지만, 우리는 비중이 크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탄소 배출 등의 문제로 축산 분야가 껄끄러운 부분인데, 대표적인 축산 수출국인 아일랜드 사례에서 해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윤동진 농정원 원장은 “아일랜드 사례는 국제 시장·규제가 분리되지 않고 함께 움직인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글로벌 농업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연구와 함께 우리 스스로 변화하기 위한 노력과 학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