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보다 멀리’ 보는 스마트농업 확산 정책

임영훈 과학기술정책연구원

2025-10-15     한국농어민신문

[한국농어민신문] 

농가·농산업체 등 자발적 참여·투자 없이
정부 보급률 목표 달성·안정 성장 어려워
시혜적 시각 벗어나 공공-민간 함께가야

지난 20여 년의 농업계 변화를 되돌아볼 때, 가장 혁신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변화 중 하나는 스마트농업의 도입과 확산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스마트농업은 고된 농업노동을 대체하는 생력화와 편의성, 농업·농촌 고령화 및 공동화로 인한 인력 공백의 대처, 높은 생산(효율)성이라는 장점은 물론, 가팔라지는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효과적인 대안이기 때문이다. 이에 선도적, 진취적인 농가의 자발적 참여 확대와 함께, 정부도 농업의 디지털 전환을 실현하는 수단으로서 스마트농업의 확대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2024년 발표된 스마트농산업 발전방안에서는 ‘2027년까지 스마트농업 기술 보급률 30%로 확대’를 정책목표로 제시했고, 2025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서 ‘2030년 시설원예 스마트농업 보급률 35% 달성’을 정책목표로 제시하기도 했다. 정부의 정책목표는 우리 농업의 생존과 미래를 위한 스마트농업 기반의 농정방향, 정책의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렇듯 스마트농업이 필수불가결한 대안이라는 데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정책목표를 공감함에 있어 약간의 불편함은 존재한다. 왜 ‘보급률’일까? 통상 보급률에 초점을 둔 정책목표는 상하수도 보급률, 인터넷 보급률 등과 같이 공공서비스, 사회간접자본처럼 정부가 주도하는 공급자적, 일방향적, 시혜적인 정책활동과 그 결과에 적합한 표현이다. 스마트농업 확산을 위한 마중물로서 정부의 역할은 분명히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스마트농업이 혁신성장산업, 미래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농가, 농산업체 등 민간의 자발적, 적극적인 참여 확대가 더욱 중요하다. 정책사업 보급 기준이라 하더라도, 민간의 추가적 자본투자, 기술도입 없이 보급률 목표 30% 또는 35% 달성은 용이하지 않다. 또한 정책 지원 의존도가 높은 목표 달성은 실질적이고 안정적인 성장으로 착근되기 어렵다. 정책 슬로건, 즉 정책목표의 선언적인 가치는 분명하지만, 스마트농업의 궁극적 성장은 민간 주도, 정부 지원(보조)의 합작품이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공급자적, 일방향적, 시혜적 정책 시각과 철학이 담긴 ‘보급(률)’이란 용어는 적절성이 낮다. 민간의 자발적 참여에 초점을 맞춘 ‘도입(률)’, ‘채택(률)’ 내지 안정적 성장의 결과를 반영하는 ‘착근(률)’, ‘생존(률)’ 등의 대안적 용어로의 전환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정확한 실태조사에 따르는 현실적 어려움은 예상된다. 그러나 ‘정부가 얼마만큼 보급했다’는 것보다 ‘농업현장에 스마트농업이 얼마만큼 확산되어 있다’는 것이, 스마트농업에 대한 신규진입 의사결정과 행동에 더욱 실질적이고 유용한 메시지가 될 수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아울러 용어의 적절성 여부를 떠나, 목표치 30%, 35%는 스마트농업을 도입한 농업현장의 다양한 현실수준, 기술수준을 단순화시킴으로써, 잠재적 수요자인 농업현장의 왜곡된 인식과 몰이해, 부적절한 의사결정을 초래할 수 있다. 시설원예만 놓고 보더라도 스마트농업은 개별제어형, 통합관리형부터 자율형, 지능형에 이르는 다양한 기술수준이 농업현장, 연구현장(데모온실)으로 구현되어 있다. 이러한 다양성, 기술발전 수준과 현장 도입·활용·정착 수준의 괴리에 대한 정확한 메시지 없이 ‘보급률 OO%’로 단순화시킬 경우, 뒤쳐짐에 대한 걱정은 물론 막연한 기대치로 인해 스마트농업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를 유발할 수 있다. 남들 다하고 있고 그들 모두 충분한 기술적, 경제적 혜택을 누리고 있으니, 스마트농업을 빨리 도입해야 한다는 조바심에 자칫 준비가 부족한 채로 시의적절하지 못한 의사결정을 초래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매우 적절한 대안이라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보급형 OO%, 고급형 OO% 등과 같이 농업현장의 다양한 스마트농업 수준을 구분해서 알려주는 정책목표와 메시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격언이 있다. 스마트농업을 빨리 확산시키려는 정책철학과 노력은 인정되어야 하지만, 스마트농업의 미래를 위해서는 공공(정부)과 민간(농가, 농산업체)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보급(률)’이라는 공급자적, 일방향적, 시혜적 정책 시각을 전향하고, 실제 농업현장과 관련된 분명한 메시지를 담아 정책목표를 세우는 것이 한국 스마트농업의 실질적 성장, 질적 성장을 도모하는 시작점이 아닐까 제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