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2030, 그들이 사는 법] 쌀이 떠난 자리에는 불신이 남았다
[한국농어민신문]
올해 보여주었던 농식품부의 오락가락한 타작물재배에 대한 입장은 현장에서 느낄 수 밖에 없는 정책의 불신을 잘 보여준다. 높은 생산장려금을 내세우며 논콩 심기를 장려했지만, 정작 과잉생산이 우려되기 때문에 자제하라는 지침이 내려오니 현장에서는 정부 말만 믿고 심어서는 큰일 나겠다는 불신이 생겨버렸다.
| 김현희 청년농부·전북 순창
중국에는 '위에는 정책이 있고, 아래에는 대책이 있다(上有政策 下有對策)'이란 표현이 있다. 중앙정부 및 상급기관에서 정책을 제정하여 반포하여도, 지방정부 및 하급기관, 개인들이 해당 정책을 집행하지 않고, 빠져나갈 방법을 찾는다는 뜻이다. 더 나아가서는 '위에서 정책이 하나 나오면 아래에서는 대응책이 백개 생긴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는 정책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현장의 인식을 잘 나타내는 표현이다. 중앙의 정책이 현실과의 괴리가 워낙 크기 때문에 제 아무리 강력한 정책을 입안하더라도 현장에서는 이를 믿지 않고 편법을 찾게된다.
올해 보여주었던 농식품부의 오락가락한 타작물재배에 대한 입장은 현장에서 느낄 수밖에 없는 정책의 불신을 잘 보여준다. 높은 생산장려금을 내세우며 논콩 심기를 장려하더니, 갑자기 과잉 생산이 우려된다며 자제하라는 지침이 내려오니 현장에서는 정부 말만 믿고 심어서는 큰일 나겠다는 불신이 생겨버렸다.
논에 콩을 심는다는 것은 못자리 과정에서 벼 대신 콩을 심으면 되는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논을 아예 배수가 잘 되도록 갈아엎어야 하고, 논콩을 파종할 수 있는 전용 트랙터와 수확기계까지 모두 갖춰야 할 수 있는 일이다. 큰 돈이 드는 일이고 장기적인 계획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사안에 대해 하루아침에 다른 지침으로 대응하니 농민들은 불안할 수 밖에 없다. 과거에 작물을 선택할때 우스갯소리로 '나라에서 하라는 것만 피하면 된다'고 말했다는데, 다시 그런 시대로 회귀한 것만 같다.
한국인 밥상의 주식인 쌀이 홀대 당하는것은 어제 오늘일은 아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발표에 따르면 국민 1인당 쌀 소비량보다 3대육류(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소비량이 더 많아진게 벌써 2022년부터다. 이 차이는 매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인구도, 소비도 줄면서 벼는 감축대상이 되고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대체 그렇다면 논에 벼대신 무엇을 기를까 하는 게 문제다. 우리나라 농경지의 절반 이상이 여전히 논인 이상 그 중 1%만 타작물로 전환해도 그 양은 상당할 것이고 시장에는 큰 충격이 올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정책마저 신뢰를 잃었다는 것이 가장 뼈 아픈 대목이 아닐까.
그나마 수요가 높고 수급불균형의 위험을 피할수 있는것이 사료용 작물일텐데 문제는 사료용 작물이야말로 보조금이나 지원금이 없으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작물이라는 것이다. 벼에 비해 수익이 낮고 관련 기계들이 워낙 고가이다 보니 농가에서 쉽게 선택하기 어렵다. 특히 지금처럼 농식품부가 가야할 방향을 제대로 정하지 못하고 정책변동의 위험성을 한껏 보인 상황에서 누가 안정적인 벼 농사를 버리고 이 방향으로 가려고 할까.
내 주변만 하더라도 올해 사료용 작물을 심었던 주변 농가는 제때 수확을 하지 못했다. 수확기계를 가진 사람에게 몇주전부터 수확을 의뢰했는데도 재배 필지가 크지 않으니 작업자가 시간 될때 온다온다 말만 하고 실제로는 오지 않았다. 몇번을 더 읍소한 후에야 겨우 와서 수확을 해주었는데, 작업자도 기계유지비까지 생각하면 수지타산이 안맞는 일이라며 사료작물 수확이 쉽지 않아 고민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사료작물을 심었던 농가도 읍소하고 마음고생하며 애태우는 것에 비해 딱히 수익도 생기지 않아 내년에는 사료작물을 안하겠다고 한다.
계속 이렇게 되면 결국 농가들은 버티는수밖에 없다. 위에서 어떤 정책이 내려오든 믿지 않고, 불이익을 준다 한들 어떻게든 피할 방도를 찾아가며 계속 벼를 심는 것이다. 신뢰를 잃은 정책은 현장에서는 혼란만 가져다 줄 뿐 문제 해결을 위한 변화를 가져오기는 어렵다. 농가들이 백가지의 대응책을 찾는 일이 없도록, 부디 정부는 어렵더라도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며 해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책임있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