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1차 산업’이란 표현이 적절한가
임영훈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한국농어민신문]
제조·서비스업보다 낮은 위치 오해 불러
차수표현은 일본으로부터 수용된 개념
적절성 따져보고 대안적 표현 찾아봐야
농업을 언급할 때 쓰이는 다양한 표현들이 있다. 1차 산업, 기간산업, 기초산업, 사양산업(부정할 때), 국가전략산업, 6차 산업화, 농촌융복합산업, 스마트농업 등이 빈번한 예이다. 이 중 학술, 정책 및 일상에서 흔히 통용되는 용어는 1차 산업이다. 나머지는 대부분 농업의 중요성을 강조하거나 농업의 기술적, 산업적 변화상을 반영하는 수사학적 표현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농업을 1차 산업이라고 말할까? 1차 산업이란 표현이 적절한가, 아니면 부적절한가? 애초부터 이것이 궁금해 할 필요가 있는 문제이기는 한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뿐더러, 습관처럼 농업을 1차 산업으로 인식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1차 산업이란 표현은 참으로 모호한 표현이다. 그리고 농업을 제조업(2차 산업), 서비스업(3차 산업)보다 낮은 위치로 인식시키는 오해의 주범이기도 하다.
사실 1차, 2차, 3차로 산업을 분류할 때 차수는 순서를 의미하는 가치중립적인 표현이다. 여기서 순서라 함은 경제의 발전에 따른 산업구조 변동, 주류산업 변화를 반영한다. 경제가 발전할수록 국내총생산(GDP), 종사자 수 등과 같은 경제지표에서 농업보다 제조업의 비중이, 제조업보다 서비스업의 비중이 높아진다는 의미이다. 주류산업이 농업에서 제조업으로,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이는 오랜 경제발전의 역사에서 객관적 수치로 확인된 현상이다. 이러한 3분법에 따른 산업 분류는 1930~1940년대 콜린 클라크 등과 같은 프랑스 경제학자들에 의해 체계화된 이후, 전 세계적으로 100년 가깝게 이견 없이 잘 사용되어 왔다. 3분법에서도 농업은 primary sector, 제조업은 secondary sector, 서비스업은 tertiary sector로 순서 개념에 입각하여 산업을 분류한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차수로 구분하는 산업 분류는 일견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고차산업, 고차서비스산업 등과 같은 용어의 사용과 맞물려, 순서를 의미하는 차수 개념이 높고 낮음(高低), 위계를 의미하는 개념으로 오인될 수 있는 점이다. 더욱이 제조업, 서비스업에서 빠르게 수용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까지 등장했으니, 1차 산업인 농업은 구산업, 사양산업 혹은 저차산업이라는 인식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 본래의 의도와 무관하게 차수 표현이 농업의 사회적 가치, 현대적 위상을 낮게 인식시키는 폐단을 낳고 있는 셈이다.
더 나아가 속된 표현으로 웃픈(웃기면서도 슬픈) 것은 차수 표현의 연장선 상에서 농업이 6차 산업으로 명명되는 점이다. 1990년대 일본에서 처음 사용되어 2010년 ‘6차산업화·지역활성화법(六次産業化·地域活性化法)’ 제정을 계기로 일본의 공식용어가 된 6차 산업은 한국의 학술, 정책 및 일상에서 여과 없이 수용되어 통용되고 있다. 1~3차 산업의 융복합을 통해 농업의 부가가치를 높인다는 개념 자체는 전 세계적으로 존재하지만, 일본과 한국을 제외하면 농업을 6차 산업으로 명명하는 국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6차 산업이 웬 말이냐는 우스갯소리, 조소 섞인 표현도 결국 차수로 구분하는 산업 분류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경우 법률적 용어로는 농촌융복합산업이, 학술, 정책 및 일상적 용어로는 6차 산업(6차 산업화)이 사용되는 비일관성의 문제도 관찰된다.
영국 마가렛 대처 수상의 명언으로 알려진 것 중에 “생각을 조심해라, 말이 된다. 말을 조심해라, 행동이 된다”라는 표현이 있다. 말, 즉 언어는 생각과 행동의 매개가 된다. 나쁜 의도가 없더라도 농업을 1차 산업으로 표현하고, 1차가 3차보다 낮은 차원으로 인식되는 오해의 연결고리는 결국 농업에 대한 인식(생각), 농업을 대하는 태도(행동)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더욱이 1차, 2차, 3차, 6차 등의 차수 표현이 일본으로부터 수용된 개념이라면, 비록 습관처럼 정착된 용어라고 할지라도 한 번쯤은 되새겨보고 적절한 대안적 표현을 찾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당장은 입에 착 달라붙는 표현은 아니더라도, 중립적 관점의 산업 분류라면 1차 산업 대신에 제1 산업과 같은 표현도 고려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