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2030, 그들이 사는 법] 마음이 꺾이는 순간들

2025-07-22     한국농어민신문

[한국농어민신문] 

보통은 유통구조에 모든 탓을 돌리곤 하지만, 유통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손실이나 보관, 운송, 판매를 위한 비용들을 생각하면 단순히 유통업자들이 잘못됐다고 매도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이러한 유통에 대한 비용 보전이 당연한 만큼, 농사에 있어 최저 생산비도 보전돼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닐까.

김현희 청년농부·전북 순창

건조한 무더위 속 비가 한방울도 내리지 않아 속이 탔던 것이 열흘 전이었다. 밭은 만들어뒀는데 비예보는 기약이 없어 트럭에 달린 동력 분무기에 물 호스를 연결해 자리마다 물을 뿌리고 힘들게 힘들게 들깨모를 심었다. 자라던 고구마도, 토마토도, 고추도 모두 물이 없어 고생하는걸 보며 답답했었다.

그랬던 세상이 하루아침에 수해지역으로 변해버렸다. 하천 변에 있는 다리들이 출입이 통제되면서 고립된 마을들이 생겨났다. 마을 언니네 논둑이 무너지고 지대가 낮은 곳은 모두 침수됐다. 힘들게 심어둔 논콩이 보이지도 않게 물에 잠겼다. 그토록 고대했던 비였는데 너무 아프게 내렸다.

날씨가 개고 이제야 내가 알던 습하고 더운 여름이 찾아왔다. 비온 후 풀과 작물은 쑥 자라고 이제 해야 할 작업들이 산재해 있는데 좀처럼 일을 할 힘이 나지 않는다. 농사를 짓다보면 노력이 무색해지는 순간이 많다. 기후재난이라는 거대한 청구서 앞에 농민이 된 나는 지불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앞으로도 이런 기막힌 상황을 계속 마주해야 할 텐데 잘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다행이라고 말하는 것도 민망하지만 이번 폭우에 내가 짓는 논과 밭은 큰 피해가 없었다. 그러나 잘 정식해서 기르고 있던 하우스가 완전히 침수됐다는 주변 농부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마음이 꺾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 말고 다른 농가는 잘 안돼야 돈 버는 게 농사라지만 그런 일이 반가울 리 없다. 누구보다 농사일이 얼마나 고되고 애썼을지 뻔히 아는데 그 노력과 투자가 무위로 돌아갔다는데 탄식이 나오지 않을 리가 없다.

귀농한지 10년차, 비슷한 시기에 내려온 많은 사람들이 농사를 포기했다. 다시 도시로 돌아가기도 했고, 순창에 남아있더라도 농사가 아닌 다른 일을 찾아서 하고 있다. 전업농이라는 삶의 무게를 감당하는 것은 지역에 든든한 기반이 있는 토박이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의욕과 열심을 다해 농사를 지었던 많은 사람들이 마음이 꺾여 하나 둘 땅에서 멀어져 갔다.

나도 전업이라고 하기에는 부끄러운 규모의 농사를 짓는다. 체험이나 다른 일을 병행해야만 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 대신 남는 시간에는 비슷한 처지의 다른 농가 일을 많이 돕는다. 순창에 내려와 아직까지 포기하지 않고 매년 농사를 이어가는 언니들을 응원하고 싶어서다.

지난달엔 작가 일을 하는 언니의 감자 수확을 도왔다. 비오기 전 수확할 일손이 부족한 상황이라기에 바쁜 중에도 시간을 내서 도우려는데 중간에 그만 언니의 마음이 꺾여버렸다. 시장 가격을 체크하려고 감자 20kg 박스 7개를 먼저 출하했는데, 딱 10만원이 입금된 것이다. 언니는 이 가격이면 아무리 잘 수확해서 팔아도 지금까지 밭에 들인 값도 안 나온다며 망연자실해 했다.

그래서 언니를 다독여 비오기전 수확을 마치고 저온저장고를 빌려 직거래로 열흘에 걸쳐 다 팔았다. 빨리 팔기 위해 비교적 싼 값에 팔았지만 공판가격에 비하면 훨씬 제 값에 팔 수 있었다. 그리고 내년에는 무농약 인증을 받고 순창 학교급식에 큰 감자는 선별해 납품하고, 나머지는 직거래로 미리 예약을 받아 밭에서 작업해 바로 보내기로 계획을 짰다. 감자 농사를 포기할 생각을 했던 언니는 이렇게 다시 꺾인 마음을 세울 수 있었다.

농사를 잘 짓는 귀농인은 귀하다. 일단 경험이 없기 때문에 적기에 제대로 된 판단을 잘 내리지 못하고, 본인만의 철학이 담긴 농사를 지으며 풀밭을 만들 때가 많다. 언니는 처음부터 주변 농가들에게 열심히 배우고, 해야 할 시기에 맞춰 작업을 잘 해서 제법 농사를 잘 지었다. 이렇게 농사를 잘 지었는데도 따로 유통에 신경 쓰지 않으면 최저생산비도 못 받는 상황이 과연 말이 되는 상황일까.

농산물 가격 폭락이라는 기사가 뜨면 항상 댓글이나 도시 지인들에게서 듣게 되는 말은 ‘여기에서 사려면 비싸다’는 말이다. 보통은 유통구조에 모든 탓을 돌리곤 하지만, 유통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손실이나 보관, 운송, 판매를 위한 비용들을 생각하면 단순히 유통업자들이 잘못됐다고 매도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이러한 유통에 대한 비용 보전이 당연한 만큼, 농사에 있어 최저 생산비도 보전돼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닐까. 왜 우리는 이 당연한 일을 기대하지 못하고 왜 도박하는 심정으로 시장에 농산물을 내야 하는 것일까.

농사를 지으면 어쩔 수 없는 일들을 계속 마주한다. 기후재난과 수급조절, 가격폭락 등 열심히 농사짓는 것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들 앞에서 농민들의 마음이 꺾이지 않도록 다양한 안전망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