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2030 그들이 사는 법] 정부 정책이 성과로 이어지려면
[한국농어민신문]
정책이 정말 성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정말 원하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사업을 신청하는 사람뿐 아니라 진행하는 행정도 원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민과 관이 함께 협력해서 마음을 모아 성과를 이뤄내는 일은 쉽지 않다. 민이야 개인의 이익이든, 신념이든 원하는 바가 있어 사업에 열심을 보이지만, 관의 경우 그냥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ㅣ김현희 청년농부·전북 순창
올해 전라북도에서는 토종농작물 직불금 시범사업이 시작됐다. 토종종자를 심는 농가에게 친환경 직불금처럼 면적에 따라 지원금을 지급하는 내용이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순창씨앗모임에서는 몇 년 전부터 연구조사에 임하며 정책 마련에 일조해왔기에 어느 정도 정보공유가 이뤄지고 있었다. 그래서 올해 사업신청이 시작됐다는 이야기가 들리자마자 친한 언니네는 서류를 준비해 면사무소에 직불금을 신청하러 갔다.
면사무소 직원은 이 사업 자체를 잘 모르고 있었다. 시범사업이고 관련내용이 이장회보에도 나오지 않았는데 어디서 정보를 얻었는지 궁금해 했다. 한참을 여기저기 전화하고 알아보고 나서 접수를 해주었는데 말미에 ‘이 사업 더 이상 아무도 신청 안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더란다. 아쉽게도 그 면에는 씨앗모임 회원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 공무원의 바람은 이뤄지지 못했다.
이렇게 진솔한(?) 공무원은 흔하지 않다. 하지만 위의 공무원처럼 직설적으로 얘기하지 않아도, 친절하게 다양한 자격을 두면서 사업이 활성화되지 못하는 사례는 부지기수다. 행정적으로 복잡하고 문제가 생길 여지가 있는 사업들은 소극행정을 통해 서서히 사라지거나, 원래 취지와는 많이 바뀐 모습으로 진행되곤 한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과거 청년정착 포럼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지역청년단체 대표의 이야기였는데, 그 지역 군수님이 청년사업에 열의가 있어 담당 공무원과 열심히 사업을 준비하며 친해졌다고 한다, 어느 날 술자리에서 담당 공무원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근데 대체 이 사업 왜 하는거에요?’ 라는 진솔하고도 황당한 질문을 들었다고 한다. 본인이야 위에서 내려온 업무라 사업을 하고는 있지만 사실 지역에 정말 청년들이 올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수는 있는지, 온다면 대체 어떤 청년들이 왜 온다는 것인지, 이들은 이렇게 힘든 사업을 대체 왜 하고 있는 것인지 담당자조차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정책이 정말 성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정말 원하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사업을 신청하는 사람뿐 아니라 진행하는 행정도 원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민과 관이 함께 협력해서 마음을 모아 성과를 이뤄내는 일은 쉽지 않다. 민이야 개인의 이익이든, 신념이든 원하는 바가 있어 사업에 열심을 보이지만, 관의 경우 그냥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 사이 담당부서가 바뀌기도 하고, 열심히 성과를 내도 지역에서는 오히려 관련 민원만 늘어 공무원 개인에게는 오히려 손해가 되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행정은 점점 어떻게 사업이 잘될지 보다는 어떻게 진행해야 민원이 없을지를 고민하게 된다. 나는 이걸 귀농귀촌지원센터라는 중간지원조직에 있을 때 정말 많이 느꼈는데, 귀농귀촌관련 지원과 각종 사업이 활성화되면서 지역에서는 왜 귀농인들에게만 이렇게 많은 혜택을 주고 지역민은 찬밥이냐고 하는 민원이 늘어나고, 이를 행정이 부담스럽게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정착자가 많고 교육성과가 높아도, 작은 민원이나 지적에 쩔쩔 맬 수밖에 없으니 일을 하는데 동기부여가 잘 되지 않았었다.
어떻게 하면 정책이 성과로 잘 연결될 것인가 하는 질문은 풀리지 않는 큰 숙제다. 사실 나는 2019년 청년영농정착지원사업을 포기하면서 지원사업에 대한 불신의 벽을 크게 쌓게 되었다. 정말 기반 없이 영농정착을 바라는 청년에게 이 정책은 알맞지 않았지만, 이런 나의 목소리는 행정에게는 관심밖에 일이라는 사실이 마음 아팠던 것 같다. 나의 실패는 그냥 개인의 실패일 뿐 내가 말하는 정책의 문제점이나 개선점은 누군가에겐 그저 불평불만에 지나지 않겠구나 하고 느껴지자 그냥 침묵하게 됐다. 더 이상 정책에 기대하지 않기가 내면의 답이 된 셈이다.
그런데 올해 불거졌던 청년창업농 자금부족 사태를 알게 되고, 공감 없고 무책임한 행정과 금융권의 반응을 들으면서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을 겪었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지금의 나의 태도도 건강하지는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게 누가 지원사업을 믿으래’ 하면서 냉소할게 아니라 더 좋아질 수 있도록 방법을 찾고 연대하고 공론화하는 일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종 농작물 직불금을 비롯해, 청년창업농 지원 등 많은 지원 정책들은 이것이 생기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연구가 담긴다. 또 지금의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갈망 역시 들어있다. 이 뜻이 어떻게 하면 현장에서 왜곡되는 일 없이 잘 이뤄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적극적인 행정의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 고민하며 현장의 사례로서 목소리를 잘 낼 수 있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