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2030, 그들이 사는 법] 농촌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
안재은 충북 청주
[한국농어민신문]
얼마 전 심각한 고민을 했다. ‘남자로 태어날걸......’ 내가 성정체성에 혼란이 온 것인가? 농촌에서의 성정체성에 혼란이 왔다. 무슨 말인가 하면 여자이기 때문에 농업기술을 더 쉽게 배우거나 활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2018년 다니던 회사에서 퇴사한 나는 농사를 지으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항상 농사를 기본으로 활동을 해왔다. 과수원에서 일하면서 4년 동안 과일을 재배하는 방법을 배웠는데, 그 덕인지 작년에 체리과수원 주인아저씨께서 내가 과수원을 인수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하셨다. 그동안 300평, 600평, 800평 등 작은 밭도 혼자서 농사지어 왔기 때문에 나는 좋은 값에 나온 2000평의 체리 과수원이 나의 농업 라이프를 성장시켜 줄 거로 기대하고 체리과수원에 투자했다.
농지는 임차하고, 나무와 창고 등 지상권을 샀다. 그리고 약 치는 기계도 중고로 구매했다. 그렇게 큰돈을 쓰며 빈털터리가 됐지만 드디어 과수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뿌듯했다. 체리과수원 전 주인과 1년간 기술을 전수한다는 특약으로 계약하고, 1년 동안 과수원이 돌아가는 농사 방식을 익히기로 했다.
하지만 나는 곧 내가 처한 상황에 실망하고 말았다. 남자친구가 주말에 일을 도와주면서 자연스럽게 전 주인은 기술 전수를 남자친구에게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대수로이 넘겼다. 그러나 어떤 한마디 때문에 농촌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에 대해서 회의를 느껴버렸다.
봄이 되고 약을 쳐야 할 때였다. 기계를 운전해본 적은 있으나 약을 쳐 본 적은 없어서 그날은 내가 약을 치기로 했다. 약치는 법을 알려주신다고 해서 기대를 했는데 나는 약을 타기만 하고 운전하는 건 남자친구에게만 알려주셨다.
“이런 건 남자가 해야 하니까 재은 씨는 옆에서 도와주기만 해”
나는 그 말에 속이 많이 상했다. 농장을 운영하는 주체가 내가 아니라 도와주러 온 남자친구로 바뀐 것이다. 나는 10년을 넘게 운전도 했고, 5년을 농사짓고, 농기계 교육도 이수했는데, 운전경력도 1년밖에 안 되고 농사를 안 짓는 남자친구가 ‘남자’라는 이유로 농장의 주체가 된 것이다. 체리과수원 전 주인은 나에게 밭을 인수해준 게 아니라 내가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소식에 밭을 인수 해 줬나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고 보니 지난 4년 동안 일했던 과수원에서 기계나 접목 등 중요한 기술은 거의 배운 적이 없었다. 그리고 남자친구가 농사에 관심을 두자 이장님이 남자친구한테 접목하는 법도 알려주고, 기계도 쉽게 내어주셨던 게 기억이 났다.
분명 농기계 수업을 받을 때 기계는 근력이 약한 여자가 더 필요하다면서 강사님께서는 마력이 높은 기계가 여자한테 더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현실은 다르다. 농사 기술을 익힐 기회의 불평등이 일어나고 있었다. 농촌에서 여자로 산다는 건 호미나 낫을 다루는 농기구에 대한 능력치는 올라가지만, 기계를 다루고 농사 기술을 배우는 능력치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일까. 내가 남자였으면 똑같은 상황에서 많이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