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2030, 그들이 사는 법] 산내끼 꼬는 기계를 얻다
김현희 / 청년농부·전북 순창
[한국농어민신문]
모바일 중고거래 장터인 당근마켓 둘러보기는 오래된 내 일과 중 하나이다. 재미있는 물건이나 싼 물건이 없는지, 혹시 아는 사람이 올린 물건은 없는지 염탐하곤 한다. 도시와 달리 순창은 거리를 최대한 멀리 설정해놔도 물건이 그렇게 자주 올라오지 않아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은 아니다. 딱히 필요한 것도 없고, 사는 것도 없으면서 혹시 놓치는 물건이 있지는 않을까 습관적으로 하루에 한 번은 둘러보게 되는 것 같다.
다른 물건은 안 사지만 오래된 농기구나 소품 등이 싸게 나오면 직접 사러 간다. 농사를 짓고 자연물을 이용해 공예품을 만들다 보니 옛날 손때 묻은 물건들에 애정이 생겼다. 조금만 이전에 관심이 있었으면, 우리 할머니 물건들을 잘 얻어서 간수했을 텐데, 귀농 전에 돌아가셔서 집 안 정리를 싹 했던 것이 그렇게 아쉬울 수 없다.
몇 해 전에는 당근마켓을 통해 담양까지 가서 옛날 발탈곡기를 구해왔다. 호롱기라고도 불리는 발탈곡기는 지금도 소농들이 토종벼를 종류별로 탈곡할 때 유용하다. 그때 팔던 분이 발탈곡기와 함께 ‘산내끼 꼬는기계’를 파셨다. 아니 대체 산내끼가 무슨 말일까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물어봐서야 새끼꼬는 기계라는 걸 알게 됐다. 볏짚을 두 구멍에 넣고 발로 돌려서 만드는 새끼꼬는 기계는 실제 작동은 되지 않았지만 너무나도 멋지게 생겨서 언젠가는 고쳐서 쓰고 싶다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발탈곡기와 함께 산내끼 꼬는 기계도 내 트럭에 실려있었다.
문제는 순창에서 산내끼를 꼬는 기계를 사용해봤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기술 있는 젊은 분들을 찾아가 봐도 실제로 사용해본 적이 없으니 어떻게 고쳐야할지 막막하고 옛날분들도 그런 기계가 있었다는 것은 기억해도 실제 고칠 수 있다거나 사용해봤다는 사람은 좀처럼 만날 수 없었다. 여기에 창고나 여유공간이 없다 보니 기계를 이집 저집 민폐 덩어리로 맡기다가 중간에 보관을 잘못해서 녹이 나고 더욱더 못 쓰는 상태로 만들어버렸다. 괜히 내가 데려와서 더 고물이 되어버렸다는 우울함을 가지고 있다가 우연히 목포 지역방송으로 나온 뉴스를 접하며 아직도 새끼꼬는 일을 하는 마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곳에 가면 기계를 고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겼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마음을 냈다. 하루의 여유를 만들어 덜컥 기계를 싣고 마을 이름만 냅다 검색해 어머니들을 만나러 갔다. 안 계시거나 찾지 못하거나 문전박대를 당할 걱정들이 무색하게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작업 중인 어머니들을 만날 수 있었다. 뉴스를 보고 찾아왔다고 하니 재미있어하시면서 반갑게 맞아주셨다. 어머니들이 작업하는 걸 구경하고 기계를 고치고 부품을 만들어주시는 공업사 연락처도 얻어 약속을 잡았다. 어머니들은 차에 실린 내 기계를 보고서는 너무 낡아서 고치기 힘들 것 같다고 걱정하셨다. 그러고는 지금은 작업을 하고 있지 않지만, 괜찮은 기계를 가지고 있는 마을 분들을 수소문해 주셨다. 과거에는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새끼 만드는 일을 했었는데 이제는 마을에서도 만드는 분이 여섯 분밖에는 남아있지 않아 가능한 일이었다. 마침 잘 관리된 기계가 있어 바로 집에 찾아가 괜찮은 상태의 기계를 엄청나게 싼 값에 실어 올 수 있었다.
어머니들은 힘들고 큰돈 안 되는 일을 왜 젊은 사람이 하려고 하냐면서도 배우러 왔다고 하니 기뻐하셨다. 고치고 만드는 곳들이 다 이 근처에 있으니 자주 놀러 오라고도 당부하셨다. 기계를 얻고 고칠 수 있는 곳을 알게 된 것도 기뻤지만, 한결같이 지역에서 농사를 지어가며 새끼를 꼬아온 멋지고 따뜻한 어머니들의 환대를 받을 수 있어 마음 따뜻한 시간이었다. 앞으로 또 이 새끼꼬는 기계를 이용해서는 무엇을 해볼 수 있을까. 벌써부터 재미있는 상상이 머릿속을 떠돌아다니고 있다. 올해 벼농사를 잘 지어야 할 이유가 이렇게 하나 더 늘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