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2030, 그들이 사는 법] 할머니처럼

배이슬 전북 진안

2023-02-24     한국농어민신문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매년 김장철이나 장을 담그는 때가 오면 분주한 마을 어르신들을 보며 생각했었다. 그렇게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고 나면 그 집의 맛으로 이어져 내려온 문화가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남 일 같던 그 일이 덜컥 일어났다. 어떤 죽음이 갑작스럽지 않겠냐마는 내게는 너무도 갑작스러운 할머니의 부재가 아직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나의 삶이 할머니의 죽음이 아니라 할머니의 삶을 드러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할머니는 늘 남이 보기에 어떤지를 생각했다. 그것이 내게는 참 답답한 일이었다. ‘남이 뭐라 하든 나의 선택과 삶을 살아내는 것이지 뭐하러 그렇게 남 눈치 살피며 사나’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많은 사람이 슬퍼했다. 각자 할머니와 나눈 삶을 이야기했다.

어려운 시기에 남몰래 쌀을 퍼다 준 이야기, 누군가 알아주지 않을 때 와서 위로해준 이야기, 사람들에게 할머니는 그렇게 고마운 사람으로 살았다. 할머니의 ‘남 보기에’라는 기준은 그런 것이었구나! 깨달았다. 어떤 누구도 높고 낮음이 없이 마음을 다해 존중하며 사는 것 말이다. 다른 이와 그 사람의 관계를 떠나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나 삶의 태도를 떠나 내가 그들을 대함에 있어 변화 없이 동등하게 존중하는 것, 나의 마음이 부끄럽지 않는 것이 할머니 삶의 태도였다.

마을 사람들이 며칠이고 집 앞에 와서 울다가 돌아가고는 했다. 나다움을 잃지 않으면서도 남 보기 부끄럽지 않게 대하고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다. 할머니는 그런 사람이었다.

내게 할머니는 엄마이고 친구이자 농사 선생님이자 든든한 동업자였다. 세탁기를 두고도 늘 양말과 속옷은 손빨래하며 입히셨다. 할머니는 손빨래하며 기도를 하셨다고 했다. 내 새끼들이 잘 자라기를, 건강하기를 하고 말이다. 외출을 할 때면 서로 옷을 보여주며 ‘이게 나아? 이렇게 입는 거 어때’ 하고 묻고는 했다. 서로의 패션을 이야기하며 낄낄거렸다.

농사를 짓는 것도 그랬다. 책으로야 안다지만 매년 “할머니 이건 언제 심어? 지금 갈무리해? 그럼 비닐 없고, 모종 안 파는 옛날에는 어떻게 했어?” 하고 시시때때로 물었고, 할머니는 나를 위해 늘 준비하고 있는 백과사전처럼 그 밭에, 그 작물에, 이 지역에 맞는 때와 방법을 일러주곤 하셨다. 농사를 계획할 때면 밤낮없이 대토론회가 벌어졌다. 이 논에 어떤 벼를 심을지, 감자는 어느 밭에 심을지, 콩, 깨, 고추, 생강은 늘 할머니가 지어주셨어서 서로의 밭을 어디까지만 지을 것인지 합의하는 과정은 내가 가진 모든 지식과 설득의 요령을 펼쳐도 어려웠다. 긴 시간 계획을 함께 세우고 나면 가장 든든한 동업자이자 가장 자주 싸우는 조력자가 되었다. 

할머니는 그렇게 심어서야 감자가 들겠냐, 풀을 그렇게 키워 어쩌냐, 풀씨 하나 없이 메어온 밭을 버려놨다며 혼내시기도 했다. 내가 없는 사이 풀과 함께 특이한 작물을 몽땅 뽑아 놓으셔서 크게 싸우기도 하고, 깜빡하고 챙기지 못한 모종들을 챙기거나 씨앗을 받아 놓아주시기도 했다. 그렇게 나의 농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할머니와 함께했다. 할머니 없이 난데없는 홀로서기를 하려니 막막해서 내내 농사를 그만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할머니 없이 그 큰 농사를 지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렇게 집을 치우며 할머니의 흔적을 만났다. 잘 갈무리해놓은 생강과 토란 씨앗에서, 정갈히 담아놓은 메주에서, 풀 키울 거면 농사짓지 말라시면서도 소리쟁이가 필요하니 뽑아버리면 안 된다고 했더니 부러 남겨두신 소리쟁이들까지. 아직 모르는 게 너무나 많은데 차근차근 배우면 된다 생각했던 것들을 이제는 영영 배울 수 없게 되었다. 어찌 살아야 하나 막막할 때 할머니의 메주가 말을 걸어왔다. 그렇게 할머니처럼 정월달이 가기 전 장을 담았다.

자신 없지만 그렇게 할머니처럼 살고 싶다. 할머니가 남긴 흔적 중에 가장 많이 닮았고, 닿아 있는 것은 나니까. 장은 어찌 담는지, 고춧가루를 어떻게 보관하는지, 감자 싹을 틔울 때는 어찌하는지 크고 작게 할머니의 삶을 이어가고 싶다. 농촌 마을에 남은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이자 답이 사라지지 않게, 내가 할머니를 기억하는 방식은 할머니처럼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