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2030, 그들이 사는 법] 넓은 공간이 주는 가능성을 기대하며
김현희 / 청년농부·전북 순창
[한국농어민신문]
작년에 ‘시골언니 프로젝트’라는 청년여성 귀농귀촌 탐색교육을 진행하면서 농촌에 오고 싶어 하는 많은 청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청년들은 농촌에 오고 싶어 하는 이유 중 하나로 ‘넓은 공간’을 꼽았다.
605㎢ 면적에 940만명이 거주하고 있는 서울과 495㎢ 면적에 2만6000명이 살고 있는 순창을 비교해 봤을 때 당연한 기대였다. 청년들은 적은 돈으로도 넓은 작업공간을 얻을 수 있기를, 내가 먹을 농산물을 집 앞 텃밭에 길러서 먹을 수 있기를, 도시에서의 좁은 원룸과 오피스텔을 벗어나 자연과 함께 넓은 공간에서 지내게 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지역을 탐색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농촌에서도 공간은 귀했다. 시골집은 마을 집들 사이사이에 빽빽하게 자리 잡고 있는데다, 그나마 매매는 잘 나오지도 않았다. 과거에는 방치된 옛 창고 같은 공간이 싸게 매매로 나오곤 했다는데, 지금은 전설로만 내려오는 얘기다. 밭도 아무런 권리 없이 지어먹을 밭이야 구할 수 있겠지만, 제대로 임대해서 농민자격을 얻을 수 있는 밭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
그나마 이제는 청년들이 들어와 뭐라도 해보라고 면마다 행복주택도 짓고, 창업공간도 조성하고, 예술인 마을도 조성했는데, 만든 곳들마다 공간이 많이 좁다. 대체 서울 한복판에 행복주택과 전북 순창의 행복주택의 크기가 같아야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순창에 조성된 예술인 마을 역시 작업실로 쓰기에는 너무 좁아서 제대로 작업을 하려면 외부에 다른 공간을 알아봐야 한다. 실제로 이 공간을 빌려서 쓰고 있는 지역 예술인 역시 읍내에 다른 넓은 작업실을 임차해서 쓰고 있는 상황이다. 새롭게 지어지고 있는 창업 공간 역시, 창업자들이 입주할 공간이 협소해보였다.
도시에서 시행되고 있는 청년지원 사업들을 가져오긴 했지만, 공간적인 이로움은 전혀 살리고 있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 도시와 똑같은 조건이라면 굳이 이곳까지 올까 하는 생각이 안 들 수 없었다. 이렇게 하면 오히려 순창이 가진 열약한 인프라, 협소한 경제인구 등 약점만 더욱 부각될 것 같았다. 지역의 넓은 공간이 주는 가능성, 유휴 자원의 활용 등을 상상해볼 수 있게 한다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요즘 내가 작업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은 ‘공유공간 이음줄’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는데 과거 고추장 보관 창고를 리모델링해 개조한 공간이다. 지역에서 소소하게 활동하고 있는 8개의 단체가 함께 매달 회비를 낸다. 개인적으로 매달 후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행정의 지원 없이 회비로 월세와 공과금 등을 내며 공간을 이어오고 있다. 넓은 공간이라 이 곳에서 다양한 활동을 해볼 수 있었다. 올 초에는 70명 정도를 예상하며 내가 활동해오던 밴드에서 정기 공연을 열었는데, 100명이 훨씬 넘는 사람들이 찾아와 공간이 꽉꽉 차기도 했다.
공모로 진행하는 청년사업이나 문화사업 등도 공간이 있으니 겁 없이 도전해 볼 수 있었다. 순창에 와서 창업한 언니는 이곳을 체험 공간으로 잘 활용 중이다. 매달 열리는 촌시장이나 모임, 워크숍도 부담 없이 열 수 있고 가끔은 다른 단체에서 대관 요청이 들어오기도 한다. 별다른 일이 없을 때에도 사무공간은 운영 중이기 때문에 이음줄 앞에 차가 세워져 있으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들렀다 간다. 얼굴보고 안부 묻고 커피한잔 마시고 가는 것, 이런 풍성한 일상이 가능할 수 있는 것도 좋은 위치에 넓은 공간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청년들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유의 공간이 주어진다면, 도시보다 더 저렴하게 접근이 가능하다면, 훨씬 더 재미있는 일들을 많이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지역에서도 ‘왜 청년들에게만 저런 혜택을 주느냐’며 질시의 대상을 삼기보다는,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에 기대감을 갖고 지켜봐 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