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2030, 그들이 사는 법] 농사의 가장 바쁜 시기는 언제일까?!
배이슬·전북 진안
[한국농어민신문]
논밭의 작물을 거두고 난 뒤의 겨울은 농사를 쉬는 한가로울 때라는 의미로 ‘농한기’라고 말한다. ‘농사가 쉬어지는 때가 있나?’ 하는 의문이 든다.
봄에는 밭 다루고 심느라 여름에는 돌보고 키우느라 가을에는 거두고 갈무리하느라 바쁘다고 생각하지만, 다양한 품종을 자급농에 가깝게 짓다 보면 심고 돌보고 거두고 갈무리하는 일이 1년 내내 동시에 있다. 씨앗을 키우느라 육묘한다고 온실 안팎으로 바쁜가 하면 못자리 날은 허리 한번 펴기 어렵게 바쁘지만, 겨울도 그 못지않게 바쁘다.
11번째, 올해도 농사를 지을 것인지, 왜 농사를 짓는지 지나간 해를 돌아보며 짚어나간다. 긴 터널을 통과하듯 시간을 지나 답을 찾고 나면 올해 농사를 짓기 시작한다. 논밭에서야 지난 가을에 이미 올해 농사가 시작됐지만, 책상에서 시작하는 농사는 12월~1월에 짓는다.
촘촘하게 작년을 정리하고, 지난 10년의 경험이 그 뒤를 받쳐준다. 이제는 머릿속에서, 노트북과 공책과 달력 뒷장과 펜으로 밭을 갈고 심고 엎기를 반복한다.
‘작년에 차나락 심은 논이니 올해는 메벼를 심어야겠다. 2마지기 논인데 물길 중간에 있으니 늦나락을 위로 올려야겠네. 아! 8마지기는 돼야 곡물건조기에 넣어 주신다고 했는데 죄다 조금씩이면 모두 길에 널어야 하니 안되지. 해담을 늘려심되 씨나락을 잃지 않게 구석논에 씨받을 만큼이라도 손모 내야지. ‘지난 농사 때 그렸던 논 작부를 봐가며, 예년과 다르게 밀을 심어두었으니 더 꼼꼼하게 심는 시기와 양, 품종을 결정하고 걱정되는 일들을 떠올려 미리 준비한다. 물론 미리 챙긴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의 준비가 조금 된다.
그나마 논은 수월하다. 책상농사의 정점은 밭농사다. 수십 가지의 작물은 심어야 하는 양과 품종의 특징이 모두 다르다. 더구나 곳곳에 있는 작은 규모의 밭들은 밭마다 흙도 볕도 물도 다르다. 읽었던 책들을 죄다 펼쳐놓고, 헷갈리면 할머니한테 물어봐 가며 짓는다.
온갖 곳에 그림으로 그리고 컴퓨터까지 동원해서야 밭마다 때마다 어디에 무엇을 얼마나 심을지 조금씩 좁혀진다. 그러고 차근차근 씨앗을 점검하며 정리한다. 부족한 것이 있으면 계획을 바꾸기도 하고 구하기도 하며 정리되어야 씨앗을 담그고 모종을 기를 준비할 수 있다.
올해는 정기적으로 다양한 작물들을 내는 일을 목표로 삼았다. 아무리 읽어도 헷갈리는 ‘마켓가드닝’부분은 홍동의 민둥이 차근차근 올해 자신의 농사계획을 들려주며 참고한 것들과 경험을 나누어줬다. 곱씹고 지우고 막히면 자료를 찾아가며 ‘진안담배상추는 이때 더 맛있으니까 한 번 더 모종을 내야겠다. 이 자리는 물이 찔테니 두둑을 더 높이고 오이를 심는 게 좋으려나? 6월에 10kg은 따야 하니까 이르게 모종을 내야겠다’고 정리했다.
근 한 달 동안 심고 갈기를 수백 번은 한 것 같아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다.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어려워지기만 하는 것 같다. 물론 이젠 내 밭에 땅콩은 언제 심고 거두는지, 고추는 언제 내다 심고 줄을 맬지 찾아보지 않아도 안다. 그런데도 여전히 모르는 게 천지다. 게다가 예상치 못한 봄 가뭄과 단시간에 쏟아 붓는 비도 대비해야 한다. 언제는 ‘적당히 비 오고 따숩고 했겠나’마는 세력을 더해 오락가락하는 기후를 모르겠다고 손 놓고 있을 수 없으니.
‘오동지’ 음력 동짓달 날씨와 이듬해 오월 날씨가 비슷하게 간다는 말이 있다. 눈도 많았고, 소한 뒤 장대비가 내린 것을 맞잡아 보면 ‘5~6월에 비가 많이 올지도 모르겠다’며 할머니께서 지혜 한쪽 얹어주신다. 넙죽 받아 두둑을 높이고 미리 밭을 덮을 궁리를 하고 있다.
결국, 농사짓는 삶에서 농한기 농번기란 상상 속 동물 같다. 농사는 일의 개념으로 똑 떼어 낼 수 없이 삶의 모든 부분에 연결되어 있어서다. 그렇게 ‘이제는 한가하지 않냐?’는 질문에 농사는 언제가 가장 바쁘게?! 되물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