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2030, 그들이 사는 법] 다시 대나무를 잡다
김현희 청년농부·전북 순창
[한국농어민신문]
작년에 했던 논 학교 사업과 체험을 끝으로 3년간 일했던 영농조합에서 나오게 됐다. 몇 년간 나를 힘들게 했던 경제적 사정들이 조금 나아지기도 했고, 다양한 지역 자연물을 이용한 공예 활동에 더 매진해 봐야겠다는 나름의 결단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바빠 엄두를 내지 못했던 대나무 공예도 다시 시작하게 됐다. 당장 겨울부터 한 해 쓸 재료들을 갈무리해야 해 바쁜 시기를 보내는 중이다. 대나무는 뿌리로 수분이 이동하는 겨울에 베어야 공예 재료로 사용할 수 있다. 11월부터 날짜를 맞춰 순창현대죽예회 회원들과 대나무 베기를 했다. 대창고가 푸릇푸릇한 대나무로 채워지니 새로운 한 해에 대한 기대가 몽글몽글 차오른다.
출퇴근하는 일에 치여 죽공예를 못하고 있던 요 몇 년간, 함께 배움을 시작했던 현대죽예회 회원들은 전문 예술인이 돼 있었다. 복잡한 짜임과 구조를 가진 대나무 장착물을 만들고 다양한 기법의 옻칠도 척척 해낸다. 2015년 순창귀농귀촌지원센터에서 귀농귀촌인 동아리로 시작했던 죽공예 모임은 이제 매년 다양한 공예 대전에서 수상 소식도 가져오는, 전업으로 공예를 하는 사람들만 7~8명가량 되는 단체가 됐다.
2016년에 들어오긴 했지만, 현업에 치여 바구니만 몇 개 짜본 나는 어느덧 신입 아닌 ‘쉰입’이 되어 다시 활동하게 됐다. 물론 지금 남아있는 회원들은 원래도 손재주가 탁월했던 사람들이라 나에게 같은 시간이 주어졌다고 이들 같은 작품을 만들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지역에서 나는 풀들을 이용해 무엇이든 만들어보는 일이 아직도 너무 재미있고 즐겁다. 세밀하고 복잡한 짜임의 바구니는 어렵겠지만, 옆에 두고 애정 담아 쓸 수 있는 견고하고 튼튼한 바구니는 많이 만들어볼 수 있을 것 같다.
농사지으며 이런 일만 하면서 살면 참 좋겠다 싶었다. 그러나 결국은 돈이 문제였다. 이걸로 먹고 살만큼 벌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사치였던 것이 당장 개인사로 인해 매달 나가야만 하는 돈이 있었다. 그래서 순창에 내려와선 꾸준히 직장생활을 해야만 했다. 작년까진 그랬다.
올해는 좋아하는 걸로 먹고 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다시 시작해보려고 한다. 그래서 밭보다는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논농사도 몇 마지기 짓기로 했다. 쥐뿔도 없는 나는 논농사는 꿈도 못 꿨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점차 농사 규모를 줄여갈 계획이신 농사 선생님 덕분에 꿈꿔볼 수 있게 됐다.
논농사를 지으면서 빗자루를 만들고, 대나무 공예와 짚풀과 풀로 바구니를 짜고, 그러고도 조금 에너지가 남는다면 청년들과 할 수 있는 재미난 사업 한 두개만 하면 딱 좋을 것 같다.
새해 들어선 순천의 갈대빗자루 장인이신 김진두 장인님께 갈대빗자루 만드는 법을 배웠다. 작년부터 수업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기대한 만큼 재미있고 유익했다. 명아주도 날이 좀 풀리면 청려장 선생님과 함께 좀 더 베러가기로 했다. 니스 마감이 아쉬웠던 명아주는 죽공예에서 배운 옻칠이 더해져 좀 더 예쁜 광택의 청려장과 빗자루로 변신할 예정이다.
새롭게 알게 된 선생님께도 풀로 만드는 소쿠리 만드는 법을 베우러 다녀야한다. 농사일이 없는 겨울철 하루하루가 가는 게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다. 겨울엔 일이 없으니 다른 지역에 놀러 다닐까 했었는데 지금 와서는 순창에서도 하고 싶은 일이 많아 가능할지 모르겠다.
귀농 8년차라기에는 여전히 불안하고 확정적인 게 없는 삶이지만, 매일 하고 싶은 일이 생기고 새로운 기대가 차오르는 일상이라면 그래도 잘 살고 있는 게 아닐까. 현실적인 고민과 걱정거리는 여전히 산적하지만, 그래도 우선은 감사한 마음과 기대로 올 한해를 시작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