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2030, 그들이 사는 법] 농촌을 받아들이는 문화적 차이

안재은

2022-07-08     한국농어민신문

[한국농어민신문] 

“얼굴보기 힘드네. 하도 안와서 시집갔다고 소문이 났어.” 내가 매년 어르신들한테 듣는 말이다. 농한기 시즌인 겨울과 나만의 농한기 시즌인 여름에 많이 듣는다. 어르신들은 이런 나를 보고 “건달 같이 맨날 돌아다니기만 햐”라고 핀잔을 주신다. 그러다가 “나도 돈 벌고 살아야쥬”라고 말씀드리면 금세 이해하시고는 한다. 아니 이해를 못하시는 게 맞는 건가? 마을에서 관심을 받으면 받을수록 매년 시집가서 안 온다는 소문이 돌아서 가끔은 일이 없어도 마을회관에 들려서 얼굴을 비추면서 할머니들과 식재료를 다듬고, 할아버지들과는 막걸리 한 잔 하느라 시간을 보내고는 한다.

나도 농촌에 오면 마을 사람들과 농사일 하다가 새참 먹고, 막걸리 먹고, 풍년을 맞이하면 농한기를 즐길 줄 알았다. 그게 나의 농촌로망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는 걸 알았다. 농지를 겨우 구해서 이제 농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겨우 터득했다하면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땅위에 들어 가야하는 투자가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알았다하더라도 나는 잘 해결할 줄 알았다. 파종을 위해서 트랙터로 밭을 가는 작업도 투자였고, 내 밭에 둑이 무너져서 돌을 쌓아 올리기 위해 마을에서 굴삭기 인력과 돌 쌓는 인력을 구하는 것도 투자였다. 하다못해 농기구들을 준비 해 놓는 것도 소소하지만 나에게는 크게 다가오는 투자였다.

그렇게 농사짓기 위해 투자만 하는데, 농사짓지 않은 비탈지고 돌이 많은 땅에서 초보 농민이 단숨에 수익을 본다는 건 더욱이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농사를 잘 짓기 위해, 농업을 유지하기 위해서 선택한 일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었다.

마을 주민들이 강사가 되어 마을 체험을 진행하고, 마을 어르신들 캐릭터를 기획해 지역 방송국의 유튜브 방송 아이템을 만들고 출연도 하고 있다. 어르신들이 우리 마을이 방송에 나오는 모습을 신기해 할 때 나는 방송에 나온 마동리를 브랜딩하기 위해서 어르신들 농산물을 사서 판매도 해보고, 또 다른 농촌체험을 판매했다.

참 이상적인 마을의 모습이다. 이런 사례들로 강의도 하고, 컨설팅을 하며 부가수익을 얻고 있지만, 우리 마을에서는 아직 100% 인정받지 못한 것 같다. 마을에 젊은 사람이 들어오고, 방송에도 주기적으로 나온다는 건 인정받았지만 이러한 일들이 농사짓는 노동과 비례한다고 생각하시지는 않는 것 같다.

재작년에 청년들의 아이디어로 마을 어르신들의 자서전형 화보집을 만든 적이 있었다. 60대에 찍은 영정사진 이후로 사진을 찍어본 적이 없는 어르신들은 20년 만에 찍은 화보집을 만족하시면서 도시에 있는 가족들과 연락할 수 있는 소재로 활용되기도 했다. 좋은 일을 했다고 이야기도 많이 들었지만 한 할아버지는 당신의 주름진 최근의 모습을 본 적이 없으셨는지 불쏘시개로 다 태워버리셨다고 했다.

그 웃지 못 할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웃어 넘겼지만 할아버지와 젊은 나의 문화적 차이를 느꼈다. 평생을 농사만 지어오신 할아버지에게 작은 책의 가치는 ‘불쏘시개’정도였다.

젊은 내가 농촌을 바라 볼 때는 자연을 활용하고, 주민들의 오래된 문화를 활용해서 만들어 낼 수 있는 아이템은 많다고 생각한다. 땅값이 비싸고, 기후변화로 작물 재배가 더 어려워지기 때문에 해가 갈수록 농사짓기가 더 어렵게 다가오고 있다.

청년들이 농촌에서 살아가는 걸 유지하기 위해서는 각자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서 이해가 필요하다. 청년들이 어르신들을 이해하고, 어르신들은 젊은이들의 농촌살이 방식을 이해하려면 서로의 문화를 공유할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앞으로 마을의 역할, 그리고 농촌 공동체의 역할은 서로간의 농촌문화의 방향성을 공유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