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2030, 그들이 사는 법] 나와 우리의 농사계획
배이슬·전북 진안
[한국농어민신문]
겨울이 되면 하고 싶은 일들을 잔뜩 계획해 놓았다. 봄부터 가을까지 하지 못했던 일들을 미뤄둔 것들이기도 하다. 그렇게 쌓인 계획들은 겨울이 1년 내내 이어지더라도 다 하지 못할 만큼 쌓여 버렸다. 그런 계획을 뒤로하고 다시 씨앗을 고르며 농사지을 계획을 세우는 시간이 또 겨울이다.
올해 심을 작물들의 품종의 양과 심을 장소, 함께 심을 동반작물을 계획하고 심고 거둔 후 심을 것까지 차근차근 고민한다. 올 해로 10년째 연초면 늘 하는 일이지만 여전히 어렵다. 예상치 못하게 발생한 일들로 힘들었던 부분들의 대안도 고민하고, 계속 농사지을 수 있으려 이상과 현실사이에서 무언가를 덜어내고 바꾸다보면, 새로운 계획은 늘 어렵고 방대해진다. 그 와중에 한해가 멀다고 바뀌는 농업정책 덕에 달라진 정책에 맞춰 갖춰야 하거나 챙겨야 하는 서류는 어떤 것인지, 해당 사항이 있는지 수시로 신경을 써야 한다.
올해는 3년 전에 신청했던 토양개량제가 나오는 해다. 왜 3년 전에 신청해야만 받을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3년 전에는 아버지 이름으로 묶여있던 경영체를 분리했다. 각 농지에 해당하게끔 신청했는데 경영체가 분리되면서 내 경영체만 신청이 되어 대부분 농지가 지원대상에서 빠져있다. 당해 연도 추가 신청이 있어 다시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온전히 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막연한 답변을 받았다.
신청하고 공급하는데 필요한 행정적 절차는 그럴 수 있다지만 3년 전에 신청하고, 3년 전과 달라진 경영체 정보로 신청했던 농지가 해당이 안 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농지원부 폐지, 직불금 체계 등도 매년 조금씩 거듭 달라진다. 매년 헷갈리고 조금 익숙해질 만하면 담당자가 바뀌어 새잽이가 되어 있다.
생각이 많아지는 겨울. 새로이 지원사업에 접수하는 친구들에게 사업계획서 쓰는 일을 도왔다. 우리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은 그들이 보기엔 적절하지 않다. ‘지구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고민으로 생물다양성을 존중하는 작은 규모의 농사를 짓겠다’ ‘지속가능한 농업 농촌을 그리겠다’ ‘농을 다양한 관점으로 가치를 나누기 위해 이런 일들을 하고 싶다’ 같은 계획들은 최소한의 생계적 지원을 기대하며 신청하는 지원사업에서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큰 경제적 효과를 내지 못하는 일, 단계적 사업 확장이 드러나지 않는 일, 돈을 많이 벌수 있는 시장성을 확보한 계획이 아니라면 의미 없는 일이 된다.
친구들에게 묻는다. 왜 농사짓고 싶은지, 그 삶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혹은 성과지표로 판단될 결과를 떠나 어떻게 살고 싶은지. 진심으로 꺼내놓은 답변들에 끄적끄적 가위질을 한다. 세상 달콤하고 이상적인 솜사탕 같은 친구의 글을 꾹꾹 눌러 닫아 단단하게 만든다. 만들고 보면 진심도 거짓도 아닌 괴상한 사업계획서가 하나 만들어진다. 친구들은 어딘지 조금 씁쓸해졌다.
지난 1년 풀을 공부하고 새로운 품종들을 심고 거두고 아이들을 만나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설레어 하며 상상하고 실험했다. 올해는 어떻게 더 나아갈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신났었는데, 누군가의 지지를 무언가의 지원을 위해 오려내고 붙인 계획이 누더기가 되어버리니 기운이 빠질 수밖에. 수많은 농업·농촌 정책들이 아직도 대규모 기업농을 지향한다. 다양성을 통한 지속가능성을 수없이 이야기하지만 정책에서의 농업은 여전히 단일화를 지향한다. 규모와 지향에 상관없이 농을 꿈꾸는 누구든 설레는 마음으로 한해 농사를 그릴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