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2030, 그들이 사는 법] 기후위기시대 학교 텃밭의 가치와 방향①
[한국농어민신문]
교육에서 잃어버린 자립은 오늘 내가 무엇으로 살아가는지 일상에서 배우게 하고, 농의 가치를 만나고 나면 농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3년째 아이들과 학교의 작은 텃밭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ㅣ 배이슬 전북 진안
나를 담는 다양한 문장 안에서 두 번째로 많은 시간과 마음을 들이는 것이 바로 학교 텃밭 농사 선생님이다. 이든농장의 논, 밭, 산만큼이나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곳이 바로 진안에 있는 장승초등학교와 마령초등학교의 텃밭이기 때문이다. 제 때에 모내기도 못 하고 동동거리면서도 매주 학교에 아이들과 농사지으러 다닌다. 아이들과 농사를 지을 때 즐겁기도 하고, 결국 농부가 된 중심에는 농사와 교육 두 축이 있기 때문이다. 공교육과 대안교육, 그 밖에 학교를 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어서 조금은 다르게 교육을 받아온 내가 생각하는 교육의 본질은 자립이다. 학교를 만들고 다니고 교육을 하고 교육을 받는 것은 결국 한 사람으로서 스스로 먹고 살아나갈 수 있게 하기 위함이고, 스스로 살 수 있어야 비로소 더불어 사는 삶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립, 삶이란 무엇일까. 결국, 내가 먹는 것이 곧 나의 생을 만들어내는 것이고 무엇을 어떻게 먹고 어떤 일을 하는지 선택하고 꾸려나가는 것이 자립이 아닐까. 안타깝게도 우리는 우리가 무얼 어떻게 먹고 사는지, 그렇게 관념이 아닌 경험과 인지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잃어버리고 살고 있다. 지구상에서 스스로 ‘밥’을 만들며 살아가는 것은 식물뿐이다. 인간은 결국 무언가의 생명을 가지고 와서 자신의 생명을 이어나간다. 그렇게 먹고사는 꼴 즉, 생태가 어떤 모양으로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받는지 아는 일부터가 자립의 시작이다.
진열된 상품 고르듯 읽힐 고등교육 스펙이 쌓여도 반조리 식품이 아닌 온전한 밥 한 끼를 해 먹을 줄 모르는 어른으로 키워진다. 레토르트 호박죽은 데워먹을지언정 떡하니 주어진 호박으로는 호박죽을 끓일 줄 모르게 되어버렸다. 아욱을 보고 ‘먹는 거냐?’며 묻던 또래를 기억한다. 농사와 음식은 인류 최초의 문화이자 삶의 풍요를 만들어내는 기반이다. 먹어보지 못한 음식 재료는 접하더라도 먹기 어렵다. 그렇게 밥상과 함께 삶이 단순해져 간다.
어쩌면 교육은 자립을 잊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농업은 어떤가. 농민운동을 하시던 아버지 밑에서 늘 농민운동가를 듣고, 데모 때면 학교를 쉬고 현장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농자천하지대본’, 농사가 모든 것의 근간이라는 것이었다. 동시에 반대편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말은 ‘농사지어선 안 된다’였다. 그리 귀한 것을 지키기 위해 싸우면서도 내 자식은 농사짓지 않길 바라는 것이다. (물론 아버지는 4남매 중 하나라도 농사짓길 바라셨으니 조금 다르다)
5살 때 농민운동 현장에서의 이야기와 농민으로 자리매김한 지금의 현장에서 토로하는 것들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 시간 동안 누군가는 목숨을 다해 바꿔내고자 했다. 하지만 여전히 농촌에서는 내 자식만은 ‘이렇게 살게 하지 않겠다’며 땀으로 벌어 가르친다. 농촌에 사는 이, 농사를 짓는 이는 어딘가 부족한 사람으로 취급당한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절대 부족하지 않았을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농업의 구조적 문제는 나아지지 않는다. 이는 ‘농’의 가치가 사회 보편적 가치로 함께 이야기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육과 농은 서로를 살리는 열쇠가 되리라 생각했다. 교육에서 잃어버린 자립은 오늘 내가 무엇으로 살아가는지 일상에서 배우게 하고, 농의 가치를 만나고 나면 농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3년째 아이들과 학교의 작은 텃밭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농은 교과부터 스스로를 만나 가치관을 세우는 과정과 관점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넓은 품이다. 그러한 가치를 살리기 위해서는 몇 가지 방향을 세우고 나아가야 한다. 그 바탕은 ‘어떻게 하면 지구와 함께 오래오래 살아갈 수 있을까’이다. 이와 단절된 ‘먹고사는 꼴’은 그냥 살아가는 것부터가 지속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속가능성과 다양성이라는 핵심가치는 기후위기시대에 학교 텃밭을 새롭게 만나게 한다. 그런 가치를 담아 몇 가지 색깔을 가지고 나아간다.
첫 번째 씨앗농사를 짓는다. 씨앗에서 씨앗으로 돌아오는 온전한 식물의 한 살이를 통해 지속가능한 삶과 지속가능한 먹을거리, 그 바탕이 되는 생물종다양성을 지키는 것이 씨앗농사이기 때문이다. 싸고 빠른 결과와 생산량을 중심에 두기보다는 조금 덜 먹더라도 씨앗을 받아 다음해 농사를 준비하고 씨앗을 지키고 나누는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마트에 파는 상품이 아닌 생명으로서의 작물들을 만나기 시작한다. 처음 토마토 씨앗을 받던 날 한 친구가 단호히 말했다. ‘평생 토마토를 먹었는데 토마토는 씨앗이 없다’고. 토마토 씨앗을 받아 말리며 반짝이는 솜털을 보며 ‘이게 토마토 씨앗일리 없다’고도 했다. 그렇게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으로부터 벗어나 토마토와 다시 관계 맺기를 시작한다.
두 번째는 경운을 하지 않고, 풀을 키우는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다. 지구와 함께 살아가는데 가장 용감하게 많은 일을 해내고 있는 것은 흙속의 다양성 즉 미생물들이고, 그들과 함께 우리를 살리고 있는 것이 풀이다. 풀을 잘 길러 이용하고 베어 눕히고 땅을 갈아엎지 않는 것으로 지속가능성에 한발자국 더 다가설 수 있다.
세 번째는 ‘농’을 다르게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토마토와 28점무당벌레에게 배운 신비로움과 즐거움을 아이들과 나눈다. '힘들게 농촌에서 농사짓고 살지 않으려면 공부해라' 같은 맥락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농이 한 번도 즐거웠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농사의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 ‘농’을 통해 일상에서 지구와 나의 삶, 그렇게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직접 경험하는 것을 그리며 농장 밖 학교에서도 농사를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