滅 멸망할 멸, 私 사사로울 사, 奉 받들 봉, 公 공변될 공.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이튿날 현충원에서 헌화와 분향을 마치고 방명록에 적은 글로, 사심을 버리고 나라나 공공을 위해 힘써 일함을 이르는 말이다.투표 전날, 새벽 일찍 등산이나 가자는 전화를 받고 잠시 머뭇거린 건 사실이다. 내 태도에 딸아이가 반박을 해 왔다. “말도 안돼요. 나는 하고 싶어도 못 하는데.” 예상 밖의 딸 아이 말에 슬그머니 전화기를 들어 산행을 거절했다. 투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 기다렸다는 듯 딸아이가 물었다. “엄마는 어떤 대통령을 원해요?” 어떤 대통령이 뽑혀야 우리가 보다 사람답게 살 수 있을까. 엄마는 말이지….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대통령이 필요해.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데요?”대통령과 나라에 바라는 희망사항은 농사를 지으며 시골에 사는 평범한 아줌마인 나만의 희망사항일 뿐, 대통령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거라고 치부한지 이미 오래였다. 그러나 딸아이 눈빛에 담긴 세상은 아직 너무나 맑았고 이제 막 떠오르는 아침해 같은 희망이 대양처럼 넘실거렸다.농업은 단순한 사업이 아니다. 무한정 기계로 찍어낼 수 있는 핸드폰이나 컴퓨터나 자동차와는 비교할 수가 없는 인류의 근본사업이며 도시인들의 영원한 그리움이며 예측불허인 세계정세에 변함없이 우리를 지탱하게 할 힘인 것이다.사람을 두 가지 분류로 나눈다면, 아침에 나가서 돈을 벌어오는 사람이 있고 집을 지키며 따뜻한 밥을 해 놓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후자의 사람이 없을 때에 전자의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에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당장에 눈앞의 이득만 바라고 후자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결국 전자의 존재도 그 가치를 잃게되지 않겠는가.지구 한마당에서 흥정되는 엄청난 정치적인 계략과 사업적인 관계들에 앞서 이 나라 농업은 보호받아야 하고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적어도 쌀만큼은 밀가루의 전례를 밟아선 안되지 않겠는가. 인간의 가치를 상실 당하고 깊은 시름에 빠져있는 이 나라 농민들에게 새 대통령의 당선은 힘차게 떠오르는 아침해와 같다. 야간산행으로 눈 내린 대야산에 올라 아침해를 벅차게 바라보고 돌아와 새 대통령의 신년사를 읽으며 몇 번이나 눈을 비벼야 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꿈꾸기를 좋아했다. 나는 꿈의 힘을 믿는다. 꿈을 믿는 대통령,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 열심히 일하면 땀흘린 만큼 잘 사는 사회를 현실로 만들어나가자는 새 대통령의 신년사로 하여금 잃었던 꿈 하나를 다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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