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말씀에 의하면 “메주는 시월에 쑤어야 좋고 장은 정월에 담가야 제 맛이 난다”고 한다.음력으로 10월이면 입동이 지나 쌀쌀한 날씨가 이어지는 관계로 메주의 몸이 서서히 마르고(저온건조) 단단해진 메주를 동지, 섣달 양달에 걸쳐 또한 서서히 띄워야 사람 몸에 유익한 효소를 많이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설명을 구전해 온 말이다.우리들이 어렸을 때는 겨울 한철은 메주냄새를 맡으며 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웃목에는 늘 이불을 푹 뒤집어 쓴 채로 메주가 차지하고 있었는데 서서히 띄워야하는 방법이었다는 걸 그때는 정말 몰랐었다.농가의 한해 마지막 행사는 메주쑤기가 아닐까한다.모든 농사일이 마무리된 시점, 겨울을 맞이해야 할 채비로 김장과 메주쑤기를 들 수 있는데 김장은 겨울한철의 양식이 돼 왔지만 메주는 간장과 된장, 고추장의 모체로서 일년 내내 먹어야할 사계절의 식품이 되기에 소중도 하거니와 함부로 다룰 수도 없는 우리 삶의 일부다.앞에서도 시사했듯이 ‘정월 장’이라는 말처럼 메주는 3∼4 개월의 숙성기간을 거치면서 변화에 변화를 거쳐 먹거리로 거듭나는 까닭에 장 담글 달을 거꾸로 세어 준비해야할 주부로서 만고의 과제이다. 더 늦기전에 메주를 만들어 둬야 할 것 같다.평소의 습관으로 되는대로 콩을 퍼다 담갔다.구수하게 익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콩을 곱게 찧어 아버지의 목침모양 같은 크기로 만들어 짚을 깔고 나란히 뉘어놓으니 어쩜 이리 대견한지 모르겠다.한 솥에 같이 어우러진 메주를 기억하는 방법으로 한덩이, 한덩이에 순자, 영자, 미숙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노라니 웃음이 먼저 터진다. 메주가 여자는 아닐 진데 왜 하필 여자이름만 떠오르는 것일까? 그리고, 지금 내 손으로 빚어지는 갓 태어난 메주는 반들반들한 몸으로 예쁘기가 그지없는데 세상에선 “메주 같다”느니 “옥·떨·메”라든지 하며 못생긴 사람의 대명사로 아무렇지도 않게 써먹고 있으니 메주들이 들으면 무조건 억울할 것도 같고 그런 까닭에 여자의 이름은 더욱 안될 것만 같아서 번호를 매기기로 했다.한꺼번에 하는 일에 힘이 부쳐 조금씩 해보고자 이틀에 걸쳐 메주를 만들어 냈더니 생각보다 많은 양의 메주가 생겼다. 잘 말리고 잘 띄워 형제들과 나누어도 흡족할 양이다. 이 가을은 왜 그리 빨리 지나가던지…. 몸살을 앓아도 누워볼 새 없이 돌아 치던 일상 속에 덜 바쁠 때 하리라고 미뤄두던 일을 실천하고 나니 머리 속이 상쾌하고 메주를 바라볼수록 부자가 된 느낌이다. 예서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이제는 정말 한해를 마무리해도 될 것 같다. <이길숙 경기도 안성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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