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개혁은 지난 수십년간 우리 사회의 화두이다. 그 중에서도 농협중앙회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하는 신경분리 문제는 핵심적인 과제로 꼽힌다. 이 문제는 역대정권이 매번 농협법을 고쳐가면서 논의해 왔지만,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농협중앙회 신경분리가 추진되지 못한 데에는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농협중앙회 임직원의 끈질긴 반발이 있었다. 여기에 자기 편한대로 농협조직을 유지하거나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농림관료들, 법 제정권을 가진 국회의 소극적 자세도 한몫을 했다. 거대조직 농협과 정부에 맞서 농민들을 견인할 농민단체들이 단일대오를 형성하지 못한 것도 개혁 실패의 핑계거리가 돼 왔다.      

이명박 정부도 농협개혁위원회를 만들어 신경분리 추진방안을 건의 받은데 이어 2009년 12월16일 농협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에 계류 중인 이 개정안은 정부여당과 농협중앙회가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문제는 이 법안에 담긴 신경분리 방안이 농민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담보하고 있느냐이다. 

개정안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주회사 방식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주회사 방식은 현행 중앙회의 경제사업과 신용사업을 효율화하는 방안이지, 조합원과 조합의 이익을 담보하는 협동조합 방식이 아니다. 정부안은 형식적으로 농협중앙회의 이름을 농협연합회로 바꾸고, 이 연합회가 경제지주와 금융지주를 설립하는 형식인데, 이는 그동안처럼 농협의 중앙조직이 조직과 사업을 그대로 통제하게 된다. 남해화학, 농협유통 등 농협중앙회 자회사들이  지주회사 아래 들어간다고 해서 조합원과 조합의 통제를 받겠는가? 조합원과 조합이 농협의 중앙조직과 사업을 지배하려면 지주회사 신경분리가 아니라 연합회 방식의 신경분리를 해야 한다.

연합회 방식의 신경분리는 현행 농협중앙회의 기능과 사업을 분리해 중앙조직은 비사업체로서 협동조합 운동의 중심이 되고, 사업은 경제사업연합회와 신용사업연합회로 분리하는 것이다. 지주회사 방식은 중앙조직이 종전처럼 농협의 조직과 사업을 지배하는 반면, 연합회 방식이이야 말로 아래로부터 조합과 조합원이 농협을 지배하는 협동조합적 방식이다.

정부의 개정안은 상호금융연합회를 별도로 설립하자는 농협개혁위의 건의안과 달라 신경분리를 논의했던 농협개혁위 스스로가 해체를 선언할 만큼 반발을 낳았다. 농민단체들은 이후 올바른 농협개혁을 위해 지난해 10월11일 농협개혁 역사상 처음으로 미흡하나마 농업계 단일안을 도출해냈다. 이는 현행 농협중앙회를 지도 교육 등을 담당하는 비사업 중앙회로, 사업은 경제사업연합회, 금융지주, 상호금융연합회로 분리하고 경제사업에 자본금을 우선 배정하는 내용이다.

이처럼 농민들이 요구하는 협동조합적 신경분리는 따로 있는데, 마치 지주회사 방안이 올바른 신경분리인 것처럼 부르대며 국회와 농민을 압박하는 것은 옳은 자세가 아니다. 신경분리 자체가 농협개혁의 목표가 아니다.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농민조합원의 이익에 부합하는 농협을 만드는 것이 농협개혁의 목표다. 신경분리는 이를 위한 핵심과제인 것이다. 왜, 누구를 위해 농협을 개혁하는 것인지 똑바로 보아야 한다. /편집부 부국장.
이상길leesg@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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