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새들의 노래소리에 눈을 떠 문을 나서면 펼쳐지는 12폭 산수화, 그리고 사람 사는 냄새 물씬 나는 산골짜기 23가구 나란히 아웅다웅하며 살아가는 이 곳이 갓 시집온 새댁의 눈에는 지상의 파라다이스 바로 그 자체였다. 13년 전에는.어느 덧 강산이 바뀌어 세 아이의 어미로 불혹의 나이를 바라보는 지금 과거 조선 어느 화가도 화폭에 담아내지 못하였다고 믿어 바라보던 풍경은 창살 없는 감옥으로 다가오고 내 아이들이 맘껏 뛰놀며 대지와 자연이 주는 혜택이라 믿었던 농촌환경은 문화생활과의 격리, 교육기회의 박탈로 아이들에겐 미안함으로 그렇게 자리하게 되었다. 푸른 초원? 환경오염의 실태보고엔 어김없이 주범인양 도마 위에서 난도질을 당하는 것이 축산농가다. 어디 감히 소들이 땅을 밟고 살아 갈 수 있는가? 우리속에 꽁꽁 가두어 흙이라 생긴 것은 구경도 못하게 하는 것이 지금의 축산정책이 아닌가? 급전이 필요해 융자좀 받으려면 하루해가 다 가고 좀 액수가 크다 싶으면 얼마되지도 않는 전답문서 다 들고 가도 도리질이요, 보증인 세우라는 말 앞에서는 결국 돌아설 수밖에 없는 현실인 것을. 그저 우리 같은 소규모 축산인은 죽으란 저승사자의 부르심과 무엇이 다르랴.나의 둘째 광현이는 이다음에 크면 목장을 하는 것이 꿈이다. 어미보다 목장에 대해 아는 것이 많고 하루에 한번씩 목장에 들려 유량전표를 확인하고 누가 분만을 했고 누가 건유 사료를 먹고 등등. 대를 이어 가업으로 목장을 하는 집이 부러워 처음 그 아이를 보면 대견스럽고 꼬옥 그 꿈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던 때가 내겐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 아이에게 다른 꿈이 생기기를 기도한다. 일년 삼백육십오일 부부가 나란히 외출하는 일조차 어렵고 힘든 세월, 새벽별 보기 운동(?)에 이슬맞기 운동(?)까지 하지 않으면 안되는, 부모가 임종을 하여도 똥냄새 폴폴나는 축사에서 착유를 하지 않으면 안되고 부인이 해산의 고통속에서 울부짖어도 곁에 있어줄 수 없는 낙농의 길은 걷지 말라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진 않지만. 정녕 길은 없는가? 촌부의 아낙으로 그저 수확의 기쁨과 땀의 결실을 거둬들이며 세상에 감사하고 자연을 찬미하며 그래도 내 선택이 옳았다 하고 내 꿈꾸는 땅 현실이 되게 할 그날은 없는 걸까? 아직도 철부지 농사꾼의 투정밖에 할 줄 모르는 촌 여인이다. 내가 바라고 소망하는 세상은 농사꾼은 그저 땅을 일구고 가축을 돌보며 다른 근심 걱정은 없는 세상, 아무 욕심 안부리고 땀 흘린 만큼의 몫에 감사할 수 있는 세상인데 이것조차 분에 넘치는 욕심일까?<이미정 경기도 이천시 호법면 매곡1리>
한국농어민신문webmaster@agrinet.co.kr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