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월드컵이 열리던 때의 일이다. 우리나라와 독일의 한판승부가 있던 날 아침.남편은 몹시 바쁜 모습이었다. 병 문안도 가야하고 새로 시작한 계사도 돌보고 또 축구도 봐야했기 때문이다. 병 문안을 가기로 한 시간은 오후 2시였는데 남편은 1시도 되기 전부터 서둘렀다. 이유를 알면서도 넌지시 물었다. “벌써 가려구요”라고. 그러자 남편은 “그럼 빨리 다녀와서 축구 봐야지. 잘못하다가는 길거리에서 2시간을 허비할 수도 있을 테니까”라고 말했다. 남편의 그 마음이 이해가 갔다. 축구엔 별 관심이 없던 나도 그땐 축구 보는 재미로 산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남편이 나가자 일이 터지기 시작했다. 물구멍이 막혀 계사에 물이 나오지 않고 사료통에는 빈 모터만 돌아가는 등. 남편이 없다는 것을 왜 그리도 잘 아는지.당장이라도 전화를 걸어 서둘러 돌아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축구로 인해 마음이 급해있을 남편이 급히 오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싶어서 꾹 참으면서 내 힘으로 해결했다. 남편은 병문안을 무사히 다녀왔고 둘이 앉아 소리를 지르고 힘찬 박수로 격려도 하면서 경기를 응원했다. 그런데 남편은 경기를 못 볼까봐 속도를 높여 오다가 속도위반에 걸려 7만원짜리 범칙금을 내야한다고 했다. 그런 실수를 유발시키지 않으려고 나는 집에서 온종일 끙끙거리며 노력했건만.나는 당신 지금 뭐라고 했느냐고 언성을 높이면서 소리치고 화를 내며 아무리 떠들어도 마음이 풀리지 않아 슬그머니 밖으로 나와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모든 국민이 하나돼 대한민국의 4강 신화를 일궈낸 점에는 높은 점수를 주겠지만 자칫 대형 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남편의 과속은 도저히 점수를 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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