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25명이 사선을 넘고 넘어 이 땅의 품에 안겼다. 마치 추운 땅을 뒤로하고 따뜻한 남쪽나라를 찾아오는 철새들같이…. 추위와 굶주림을 피해 따스한 이곳 자유의 품에 봄소식처럼 날아든 것이다.해마다 찾아드는 외갈이떼가 금년에도 어김없이 함박산에 찾아와 봄을 알린다. 이제 곧 중대백로 쇠백로도 찾아들겠지. 포도밭에 지천으로 널린 냉이가 아까워 봄냄새가 그리운 도시사람들을 몇 차례 불렀다. 도시 사람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봄소풍을 온 듯 힘이 났다. 아이들은 개들과 넓은 포도밭을 뛰어다니며 봄을 만끽했고, 어른들은 보따리 가득 봄을 캤다. 도넛이나 순대 등 도시의 것을 들고 온 사람들은 가슴 가득 봄을 안고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갔다. 봄을 알리는 것은 철새나 봄나물만이 아니다. 점점 잦아지는 청첩장도 봄을 알린다. 간혹 장가 못드는 농촌총각 문제가 화두가 되곤 한다. 농촌총각이 장가 못드는 이유를 농촌경제, 농촌복지, 노동력 과다 등에 초점을 맞추는데, 문제의 핵심이 빠진 것 같다. 나는 여기에다 농촌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배려 부족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고 싶다.농촌으로 시집 온 새댁들은 처음에는 무엇이든지 열심히 생활한다. 묵묵히 시부모 모시고, 동네 애경사에 집안 대소사 챙기랴, 과중한 노동에 아내노릇, 엄마노릇까지 하는 사이 세월은 훌쩍 흐르고야 만다. 그러다가 문득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자세히 보게된다. 억척스럽게 살다보니 원래 여성스럽고 사랑스럽던 자신의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거칠고 사납게 생긴 낯선 여자가 딱 버티고 서 있다. 맥이 빠진다. 도시로 시집간 못생긴 동창보다 10년은 더 나이 들어 보이지 않은가. 일터에서 남편과 똑같이 일을 하고도 그날의 일과가 끝나면 남편은 신문이나 TV를 보면서 휴식시간을 갖지만, 농촌주부들은 지금부터 하루치의 일거리가 또 있는 것이다. 우선 전기밥솥 스위치부터 누른 다음 털지도 않고, 그것도 뒤집어서 벗어놓은 흙투성이 남편 작업복을 주물러서 흙물을 빼 세탁기에 넣고 동작버튼을 누른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자잘한 일상을 주섬주섬 대충 정리하고 된장찌개라도 보글보글 끓여 밥상을 준비한다. 식사 중에도 물시중을 들어야 하고 식사가 끝나면 세탁물이 구겨지기 전에 먼저 널고서야 설거지를 한다. 하루종일 동동거리며 바빴던 육신을 씻고 들어가면 남편은 이미 코를 골고 있다.TV를 보면 도시의 남성들은 일주일 내내 일 하고도 집에서 가사활동만 하는 아내들을 위해 일요일에 대청소도 해준다. 아내를 위해 특별메뉴를 준비한다며 호들갑을 떠는 모습이 가끔 나온다. 한 나라 안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그런 일들은 먼 나라 이야기같이 들린다.남성이 육체적인 동물이라면 여성은 정신적인 동물이다. 이럴 때 ‘정말 당신의 노고를 잘 알고 있다. 당신을 빼놓고는 내 인생을 논할 수 없다. 당신이 나의 전부이다’ 이런 진심 어린 말을 하면서 조금씩 도와준다면 거기에 감동 받지 않을 여성이 있을까?농촌남성들이여 돈 안드는 말 몇마디, 힘 안드는 약간의 수고 아끼지 말고 인심 좀 팍팍 씁시다! 인생이 달라질 것입니다.<이복수 경기도 평택시 고덕면 율포2리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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