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 선거가 있는 해여서 그럴까, 2002년의 새봄은 어느 때보다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분권과 자치를 내건 신명난 선거 놀이판 뒤에선 또다시 신자유주의 농업 세계화의 음모가 우리의 멱살을 바짝 움켜쥐고 있다. ○세계 도처에 번지는 ‘반세계화 물결’세계 도처에선 세계화에 대한 저항이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다. 무엇 때문일까? ‘반세계화 저항’ 속에는 세계화 때문에 토지로부터 내쫓긴 가족농에 대한 우려와 연민이 담겨 있다. 부자 나라들이 퍼부은 그 엄청난 보조금이 만성적인 과잉생산을 일으켜 세계 농산물가격을 폭락시켰고, 바로 그 때문에 가난한 나라 소농들이 농촌에서 쫓겨나 이제 농업의 전통과 가치가 근본부터 무너지고 있다. 이를 해결하겠다던 우루과이라운드협정과 그로 인해 탄생한 새로운 농업질서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소위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의 원리, 예외 없는 관세화를 내세워 비교우위라는 잣대 하나로 농업가치를 마음껏 폄하해 왔다. 농업은 모든 질적인 가치를 모조리 버리고 오로지 시장수지라는 양적인 가치로만 측정될 뿐이다. 가축과 채소의 종이 서로 다르고, 밀 중심의 서양 농업과 쌀 중심의 아시아 농업이 서로 다르듯 각 나라의 기후와 풍토, 그에 기초한 사회·문화적 요소에 의해 오랜 역사 속에서 형성된 다양한 농업 문화들은 인류의 무형자산으로 존중되어야 한다. 따라서 오직 시장가치만을 내세워 인류가 수만년 동안 쌓아온 모든 농업문화의 붕괴를 용인하는 일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각국 다양한 농업문화 반드시 지켜야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세계화가 농업 다양성에 담긴 무수한 가치들과 과연 양립할 수 있는 것인지를 진지하게 따져 보아야 한다. 특히, 쌀 개방을 두 해 앞둔 2002년의 한국인들에게 농업의 참된 가치를 되새겨야할 필요성은 더욱 절실하다. 도하각료회의 이후 개방은 성큼 다가오고 있지만, 중앙정부의 협상력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그 때문에 한국 최고의 농도(農道)인 경상북도가 앞장서서 농업의 기를 되살리기 위해 ‘2002 세계농업한마당(추진위원장 최양부)’를 개최하려 나섰다. ○경제관료, 패배주의적 개방론 극복을농업 문제의 이해 당사자인 세계의 지방정부와 농민, NGO와 석학들이 함께 연대함으로써 공유한 문제의식을 세계로 확산하기 위한 것이다. 경제관료들의 패배주의적 개방론을 극복하고 선진농업 확립을 위해 이제 우리 국민들도 농업의 그 무한한 가치에 눈떠야 한다. 자, 나약한 중앙정부가 WTO의 꽉 막힌 규정에 묶이더라도, 지방정부가 나서서 세계의 양심들과 신명나는 한마당을 펼쳐보자! 이러한 바람으로 경상북도는 오는 10월 11일부터 열사흘 동안 경주 보문단지에서 ‘농업, 그 다양성의 재발견’을 주제로 세계농업한마당을 펼친다. 이 자리에서 참석할 세계의 석학들과 지방정부들은 21세기의 농업비전을 담은 ‘경북선언문’을 채택하고, 이를 WTO에 전달할 예정이다. ○농업가치 사회적 보상 가름의 장으로세계농업한마당은 농업가치에 대한 사회적 보상의 정도를 가름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 나아가 이 기회에 그간 수없이 우리를 속여온 농업투자무용론이 과연 세계에서도 통할 수 있는지도 따져보자. 그리하여 우리와 식습관이 비슷한 일본, 연간소득이 1억원을 넘는 중국 고소득층, 그리고 청과물 상권의 80%를 쥐고 있는 미국으로 뻗어나갈 계기를 만들자. 이제 농업은 그 경제적 가치(Agri-business)를 넘는 문화적 가치(Agri-CULTURE)라는 시각에서 재정립되어야 한다. 다양성·안전성·안보성·지속성을 지켜낼 농업의 참다운 세계화만이 우리의 살길이다. 그러므로 정치적이고 상업적인 이해만으로 21세기 농업의 미래를 재단하는 만용은 더 이상 방치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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