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카타르 도하에서는 전세계 비정부기구(NGO)의 입국을 제한한 가운데 WTO 각료선언문이 채택돼 뉴라운드가 공식 출범했다. 관세 및 국내보조의 실질적인(substantial) 감축과 협상과정에서 비교역적 관심사항을 고려하기로 했고, 협상의 결과를 예단해서는 안된다는 조항이 각료선언문에 포함됐다. 이는 앞으로 2004년 말까지 협상을 진행시켜 나가는데 큰 방향을 제시해 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한편, 16일엔 국내 ‘양곡유통위원회’가 농민단체 대표들의 반발을 뒤로한 채 내년도 쌀 수매가격을 4∼5% 인하해야 한다는 건의안을 내 놓았다. ○시장경제 원칙, 농업 적용 부당바야흐로 한국 농업은 안팎으로부터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밖으로부터의 도전은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있을 수 있다고 치자. 협상에는 상대가 있기 때문이다. 협상 자체를 잘못했다고 막무가내로 몰아붙일 일은 아니라고 본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미국을 위시한 농산물 수출국들의 개방논리를 그대로 반복하는 편협한 일부 시장론자들과 언론의 몰이해다. 우리는 뉴라운드 출범과 관련해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한국농업을 살리고 최대한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형태의 농업정책을 수립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에 서 있다. 안타깝게도 먼저 풀어야 할 과제가 있다. 농업부문도 예외 없이 시장경제 원칙을 도입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어떻게 극복하는가 하는 점이다. 일부 언론과 학자들은 마치 농산물 시장의 개방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한국의 쌀시장마저도 대폭 개방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심지어 관세화에 의한 개방이 더 유리하다고 예단하는 주장도 서슴없이 나오고 있다. 말하자면 시장기능에 의한 문제해결이 훨씬 효과적이며 타당하다는 논리다.이러한 주장은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보지 못했거나, 애써 외면하고 있다. 생산물인 농산물을 시장기능에 맡기겠다면 생산요소인 토지도 시장기능에 맡겨야 한다. 농지를 시장경제에 맡기면 농민들의 책임경영이 가능해지며, 그렇게 되면 농민들이 가격폭락의 경우라 하더라도 정부에 강력히 요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농지를 시장기능에 맡길 수는 없지 않은가. 국토의 효율적인 관리측면이나, 식량안보적 측면에서나 토지를 시장기능에 맡길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토지를 시장기능에 맡길 수 없다면 그 생산물인 농산물도 시장기능에 전적으로 맡길 수 없다. ○소득보전·가격안정방안 세워야사실 쌀을 비롯한 농산물의 가격하락 사태는 농지문제만 풀면 한 번에 해결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다. 정부가 개입하고 지원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이에 앞서 해결돼야 할 것은 소득보전과 가격안정방안을 세우는 일이다. 앞으로 개방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가격상승을 기대할 수 없다면, 소득의 확실한 지지와 가격안정 정책이 최우선이어야 한다. 토지를 시장기능에 맡길 수 없기 때문이다. 여하튼 뉴라운드 출범은 우리나라 농정의 전환점임에는 틀림없다. 더 중요한 문제는 어떤 철학으로 농정을 세우는가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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